한일 갈등 속 도마 위 오른 ‘국민연금 日 전범기업 투자’, 법으로 제한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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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 또한 영향을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이 1조원 넘는 돈을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하는 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러나 투자원칙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국민연금공단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를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보건복지부는 1일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를 금지하는 것과 관련 “기금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 국가 간 분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책임투자분과위원회에서 추가 논의를 하고 관련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복지부가 다음 달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다는 SBS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통해서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현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대응할 사항이 아니라고 사실상 일축한 것이다.

31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43차 수요시위'에 참가한 부산여성단체연합 회원 등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구호를 외치며 인간띠잇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31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43차 수요시위'에 참가한 부산여성단체연합 회원 등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뒤 구호를 외치며 인간띠잇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복지부는 자료에서 “기금위에서 9월 중 전범기업 투자금지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확정한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금위에서는 일본 전범기업 투자금지 문제를 제외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및 가이드라인을 논의한 후 의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수익성·국가간 분쟁 가능성 등 따질 문제” 일축 #“전문가 의견 등 수렴 과정 거쳐야”

류근혁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국민연금 투자 제한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다. 국가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며 “법으로 (투자를) 제한하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 전범기업 투자 제한 법안들이 제출돼 있는 상황인데 지난해 9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률로 규정하기보단 책임투자 원칙에 따라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이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책임투자분과에서 이 문제를 1차로 논의했지만 포괄적인 책임투자 원칙을 정립한 뒤 이를 다시 검토하잔 결론을 냈다고도 밝혔다.

류 국장은 “이런 안건을 기금위에 올려 의결하려면 그 전에 수탁위 뿐 아니라 국민연금기금 실무평가위원회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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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지적돼 온 사항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책임투자·공적 투자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앞서 지난달 26일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현황을 분석해 지난 한 해 동안 전범기업 75곳에 모두 1조230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배상을 거부하고, 10만명 이상의 한국인을 강제동원하며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때 급격히 성장한 일본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228) 등 미쓰비시 계열사에 총 875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다. 75곳 중 84%에 해당하는 63곳은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해 수익성 측면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가 매년 늘고 있다는 데 대해 국민연금 측은 “해외주식 투자 규모 확대에 따라 비례해 증가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해외투자 비중을 늘리는 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본 투자 비중이 커졌고 그 과정에서 전범기업 투자금액도 늘었지만, 투자비중은 오히려 2014년과 비교해 축소됐다는 것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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