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나와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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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사들이 겪은 올 여름의 신고는 아마 교단에 선 이래 경험한 최악의 체험이었을 것이다. 노조결성을 위한 술렁거림, 전교조 결성과 지회·분회의 모임 때마다 겪었을 아수라장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할 터이다.
최악의 여름과 아수라강의 기억을 간직한 채 불안하고 불확실한 앞날을 보며 이제 다시 교사들은 개학을 맞게 됐다. 결성 강행과 엄중 징계의 극한 대립이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다시 이 문제와 맞서게된 것이다. 대학입시를 눈앞에 남겨둔 고 3학생들의 불안한 눈초리, 철없는 아들·딸들이 행여 가두시위에 휩쓸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학부모들의 조마조마한 마음들, 학습현장만은 사회적 혼란과 갈등에서 보호되고 소중히 간직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앞에 두고 교사들은 다시 교단에 서야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문교당국에 간곡히 당부(어제 사설)한 것과 같은 논리와 기대를 가지고 태풍의 내습을 예고하고있는 개학후의 교단에 설교사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전교조 사태가 개학 후 교육현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교사란 홀로 서있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여망과 합의에 따라 숨쉬는 여럿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난 전교조 파동에서 체득했을 것이다. 비록 홀로 선 교단이기는 하지만 교단 뒤에는 국민의 여망과 합의가 지켜서 있고, 교단 앞에는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젊은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선생님들의 행동을 지켜볼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용기인가를 선택해야 된다. 이성과 비판력이 성숙되지 않은 학생들을 거리로 쏟아지게 하고 청순해야할 청소년의 눈망울마저 적의의 핏발로 물들게 하는 것은 교육자의 정도일수는 없을 것이다. 난국을 이기는 진정한 교수상은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학생들을 보호하고 소중히 간직하느냐는 외로운 결단의 용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다수 교사들의 요구와 주장이 합당하고 설득력을 가졌으면서도 소수 교사들의 비민주적 투쟁방식이 국민적 여망과 합의를 등지게 했다는 사실을 지난여름의 전교조사태 속에서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리 드높은 명분과 이론이라도 교육의 현장을 포기한 상대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미 모두가 체험했다.
참교육의 실체가 자유 민주적 교육개혁노선인한 그 방향은 비 참여다수 교사들의 속뜻과 다를 바 없고 여론의 방향과도 틀릴 바가 없다. 그렇다면 민주적 교육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제기된 문제를 국민적 합의로 도출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개정을 거치는 민주적 수렴과정을 거쳐야한다. 자신들이 서있어야 할 교단마저 유린한 채 학생들을 거리로 쏟아지게 방치할 수 있겠는가.
용기 있는 교사, 민주교육을 주창하는 참 교사라면 비록 그것이 외롭고 힘겨운 일일지라도 교육현장을 고수하는 것을 모든 것에 우선시켜야할 것이다.
교육의 현장을 굳건히 지키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수렴되는 과정을 인내로 기다려야 할 것이다. 교육을 지키면서 교육의 개혁을 요구할 때 그 목소리는 설득력을 가질 것이고 교육을 포기하고 학생의 도움을 얻어 개혁을 요구하는 행동이 일어난다면 체제변혁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학을 맞는 교사들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며 아들·딸을 학교로 보내는 학부형들의 애 타는 심정이 한갓 부질없는 기우로 끝날 수 있도록 교단과 학교를 용기와 애정으로 지켜 주는 참 교사의 모습을 우리 모두 함께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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