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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흘러간 옛노래, 분양가 상한제 또 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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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1980년대 말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기’에 주택가격이 폭등했을 때다. 당시 박승 건설부 장관은 “민간의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분양가 자율화로 건설업자에게 집을 지을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시장은 이 발언을 호재로 받아들였고 주택가격이 더 빠르게 올랐다. 놀란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주택 부족이 지속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가격상승이 가속했다. 이 에피소드는 전체 주택시장의 가격 동향은 신규주택 분양가와 별 상관이 없음을 웅변한다.

집값은 신규주택 분양가와 무관 #재건축 활성화시키는 정책 펴야

사실 기존 주택 대비 2% 남짓한 신규 분양주택 가격이 전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주택사업자들도 분양가를 정할 때 분양주택과 대체관계인 기존 주택의 가격을 준거로 한다. 기존 주택의 가격이 분양가를 결정하지, 그 역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분양가가 자율화된 시기에 일부 분양주택이 고분양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평면·자재·주거환경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 주택들보다 우월한 요소를 가졌기 때문에 높은 분양가를 받을 수 있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최고 가격제의 일종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주택공급을 위축시키며 장기적으로 주택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학계에서는 90년대 초반에 분양가 규제 또는 자율화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결론은 분양가 규제로 신규주택의 공급 감소, 로또 분양에 따른 투기적 수요 증가, 주택 과소비, 토지이용의 비효율성 등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의 부작용으로 로또 분양을 지목하지만, 로또 분양은 보기 흉하다 뿐이고  주택공급의 양적·질적 위축이라는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간택지에 짓는 주택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고 발표하면서 주택시장이 혼란에 휩싸였다. 수많은 소비자와 사업자들, 특히 재건축 조합들이 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정책을 내놓는 것은 국민을 편하게 하는 정부의 모습은 아니다.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의 실제적 효과는 재건축 사업에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정부의 의도이기도 하다. 재건축 아파트가 주택가격 상승의 원흉이라고 보니 그 가격을 낮추면 다른 주택 가격도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건축은 오래된 자기 집을 철거하고 새집을 짓는 일이다. 정부가 지원할 일도 없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으므로 정부가 개입할 당위성도 작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비싼 값을 주고라도 새 아파트가 갖는 최신 설비와 자재, 커뮤니티 시설 등의 장점을 누리고 싶어한다. 자동차나 옷이나 음식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얼마를 주고 집을 사든 말든 남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재건축 사업을 억제한다고 해도 좋은 집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희망까지 억누를 수는 없다. 재건축을 억제하면 그 전까지 완공될 새 아파트의 가격상승 압력이 높아진다. 일부 단지는 상한제 정책하에서도 사업을 강행하겠지만, 주민들이 원하는 만큼의 고급 자재와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 결국 상한제는 새 아파트 단지의 기득권을 유지해준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재건축을 활성화해 새 아파트 시장을 경쟁 구도로 만들고 가격상승 압력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정부의 규제 조치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려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떨어뜨리면 알 수 없는 어떤 경로를 통해 서민 주거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부자와 강남은 시장에 맡겨두고 정부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들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부가 할 역할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