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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일 갈등의 일상화, 여섯가지 공생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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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양기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글로벌협력대학원장

양기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글로벌협력대학원장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청구권 협정 3조 분쟁해결 조항에 근거해 단계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1월 9일 청구권 협정 3조 1항에 따라 외교적 협의를 요청했다. 5월 20일에는 청구권 협정 3조 2항에 근거해 양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6월 19일에는 협정 3조 3항을 인용해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중재를 거부했고 일본이 요청한 시한인 7월 18일을 넘겼다.

현상동결용 잠정조치 협상하되 #군사정보협정 연계는 절대 안돼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는 한·일 모두에 부담이 있다. 한국 입장에서 소송 불응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설령 부분 승소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내적으로 패배로 받아들여질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소송에 불응할 경우 재판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ICJ 제소 실익이 없다. 강제징용 문제가 국제 이슈가 되면 다른 피해국들이 동조할 우려도 있다.

일본은 당분간 제3국 중재위 설치를 거듭 요구하면서 수출규제를 강화할 공산이 크다. 일본은 국제법상 명분을 축적하면서 그 명분의 크기에 비례하는 힘을 행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이에 맞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도 국제법과 명분으로 맞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현상 동결을 위한 잠정조치를 협상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을 설득해 일본기업의 한국내 자산 현금화에 대한 강제집행을 유보하고 일본은 추가적인 수출규제 조치를 유보하는 협상이다.

둘째, 청구권협정 3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한국의 부작위(당연히 해야 할 행위를 일부러 하지 않음)가 문제라는 명분을 상대방에게 주면 안 된다. 1953년 영국과 그리스의 암바티엘로스 사건, 50년 불가리아·헝가리·루마니아의 평화조약 해석 사건 등 ICJ 판례를 보면 조약에 중재 조항이 있는 경우 중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중재를 수용해도 불법행위로 인한 개인의 배상청구권 소멸 여부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이 쟁점에 반영되면 한국에 불리할 것도 없다.

셋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는 실익을 좀 더 따져봐야 하지만, 일본의 보복 조치가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음을 WTO를 통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넷째,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통상·안보와 연계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에 부메랑이 될 것이다.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미국의 우호적 개입과 중재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3국 공조를 어렵게 하는 안보상 중대한 장애라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과 일본은 탈냉전 시대에 맞는 전략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양국은 집단적 정체성이 충돌하고 있음에도 북핵 문제에서 협력해야 하는 냉전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을 완화하고 역내 평화를 창출해야 하는 탈냉전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공생을 위한 상호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65년의 한·일 관계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대 30의  국력 차이에서 시작했지만, 오늘의 한·일 관계는 1대 3 수준에 도달했다. 대칭적 한·일 관계에서는 분쟁 상태를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라고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한·일은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면서 공통의 이익과 전략적 가치 공유를 위해 분쟁을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려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양기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글로벌협력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