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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봉고비 45만원…일손 달려 평택·화성·고창서도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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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70~80대 노인이 지난 23일 경북 봉화군 한 마을에서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이 밭은 전날 강원 삼척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 강모(61·여)씨 등 ‘원정 밭일’에 나선 일행의 목적지였다. 박진호 기자

70~80대 노인이 지난 23일 경북 봉화군 한 마을에서 쪽파 모종을 심고 있다. 이 밭은 전날 강원 삼척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 강모(61·여)씨 등 ‘원정 밭일’에 나선 일행의 목적지였다. 박진호 기자

“이번에 사고가 난 반장님 팀은 쪽파 파종이 주특기예요. 입소문이 나서 농사 좀 하는 사람은 다 압니다.” 지난 23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1리 마을의 한 쪽파밭. 70~80대 노인들이 밭에 앉아 쪽파 모종을 심고 있었다. 이 밭은 지난 22일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전복사고로 숨진 강모(61·여)씨 등 ‘원정 밭일’에 나선 일행의 목적지였다.

목적지였던 봉화 쪽파밭 가보니 #“젊은이는 일 꺼려 할머니들만…” #절반은 불체자 “없으면 농사 못 져” #도시 인력, 농촌 연결 활성화 필요

밭에서 만난 김용철(65)씨는 “그 팀은 빠르고 일도 잘해 평이 좋았다”며 “사고 소식에 마음이 안 좋아 안치된 곳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강씨를 알게 됐다는 그는 지난달 경기도 평택에 있는 밭 비닐 제거 작업도 그 팀에서 맡아서 했다고 했다.

김씨는 봉화와 평택, 전남 무안 등지의 밭을 임대한 뒤 쪽파 등을 재배하는 일을 한다. 2640㎡ 규모의 이 쪽파밭은 올해 처음 임대했다. 이날도 사람이 없어 타지역에 있는 팀을 급하게 불렀다. 평택과 화성에서 13명이 왔고, 고창에서도 4명이 왔다. 평택에서 온 양춘화(71·여)씨는 “우리 팀은 13명이 움직이는데 내가 막내”라며 “원래 주특기는 알타리무 작업인데 급하다고 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들 역시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왔다. 운전기사가 오전 1시30분부터 평택과 화성 6개 면을 돌며 13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쪽파밭에는 오전 6시에 도착했다. 김씨는 “젊은 사람이나 남자들은 이런 일을 꺼리니 할머니들이 팀을 꾸려 제주도까지 간다”며 “먼 거리의 경우 인부를 모집하고 운전까지 하면 일당 외에도 봉고비로 45~50만원을 더 준다”고 설명했다. 봉고비는 기름값과 인부 모집비 등으로 농장주가 지급하는 돈이다. 가까운 거리는 15만원, 먼 거리는 50만원가량을 준다.

주민들은 고령화와 인력 수급 문제로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석포1리 김영분(60·여) 이장은 “쪽파밭이 있는 반야마을의 경우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이라 80% 정도는 임대를 줬다”고 말했다.

마을에선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작업반장’이라고 소개한 성모(53)씨는 태국 등에서 온 30대 외국인 근로자 10여 명과 무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3일 전 일꾼을 모집해서 봉화로 왔다. 이들은 당분간 봉화와 강원 태백을 오가며 일을 할 계획이다. 성씨는 “봉화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농장주가 서산에 있는 나한테까지 연락했다”며 “3월 전남 해남을 시작으로 5월엔 전북 부안, 충남 홍성·서산에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성씨는 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절반은 불법체류자”라고 털어놨다. 그는 “출하 시기를 놓치면 막심한 손해를 입기에 불법체류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가들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은 고용허가제(최장 4년 1개월)와 외국인계절근로자(90일) 제도가 있다. 하지만 올해 농촌에 할당된 인원은 1만여 명이다. 전체 농가 수(약 102만호)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함창모 충북연구원 박사는 “도시 유휴인력과 농촌의 내국인을 농가에 연결해 주는 일자리 연계 플랫폼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지역에 어떤 작물을 키우고 언제 인력 수요가 증가하는지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성군, 사상자 16명에 의료·장례비 지원=충남 홍성군은 지난 24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이번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16명에 대해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부군수를 단장으로 7개 반으로 구성된 ‘재발 방지 대책반’도 구성했다. 홍성군은 병원에서 치료 중인 불법체류 외국인에게는 치료비를 지원하고 주한태국대사관에 인계된 태국인 사망자 2명의 시신도 유족이 원할 경우 홍성추모공원관리사업소에서 무료로 화장해 주기로 했다.

홍성·봉화=신진호·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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