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타락은 표로 응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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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말썽 많은 영등포 을구의 선거운동도 17일로 모두 끝나고 18일엔 표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번 재선거는 동해의 전례도 있었기 때문에 모범적인 공명선거에 대한 기대와 다짐이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결과는 한마디로 허탈이라고 할밖에 없다. 폭력·타락·과열·불법·탈법·흑색선전의 난무…등 우리 선거사를 얼룩지게 한 나쁜 일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벌어졌다.
선관위와 양식 있는 유권자들 및 각종 언론들이 나름대로 힘을 모아 이런 창피스런 작태를 막아보고 줄여보자고 안간힘을 다 했지만 후보와 정당들의 열병과도 같은 혼탁한 선거운동은 제대로 견제되지 못했다.
이제 이런 비정상적인, 우리가 반드시 청산해야만 할 이런 선거운동을 견제하고 응징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마지막 열쇠가 영등포 을구의 16만8천 유권자에게 맡겨졌다.
유권자들이 냉정한 판단과 왕성한 시민의식으로 과열·불법선거운동을 한 표의 주권행사를 통해 가차없이 응징한다면 이런 폐단은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모두가 가질 수 있다.
반대로 금품향응공세와 흑색선전에 유권자들마저 휩쓸려 비정상적인 운동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투표결과가 나온다면 우리의 민주역량에 대해 또 한번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영등포 을구 유권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과열·불법선거운동을 가장 많이 한 후보, 돈을 가장 많이 쓴 후보에게는 결코 표를 주지 않음으로써 이번에 한번 본때를 보이자. 대신 상대적으로나마 법을 지키려고 더 애쓴 후보, 점잖게 움직인 후보에게 한 표라도 더 보람을 느끼게 해주자.
또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점은 지역감정으로 투표하지 말자는 것이다. 경상도출신이면 무조건 민정당이나 민주당, 호남출신이면 무조건 평민당, 충남출신은 무조건 공화당을 찍는 그런 투표 행태가 이번 영등포 을구 재선거에서부터 사라졌다는 기록을 한번 남겨달라는 것이다.
우리정치의 수준보다 국민의식수준이 더 높고 정치가 여론을 못 따라간다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는 그런 높은 국민수준이 지역감정에 가려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 중심부인 영등포 유권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자존심을 걸고 지역감정이나 금품 공세가 맥을 못 춘다는 중요한 한 선례를 만들어주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이번 재선거과정을 통해 보여준 선관위의 노력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그 많은 탈법·불법을 선관위가 제대로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법에 따라 공명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생각한다. 각종 교묘한 불법행위를 선관위가 완벽하게 단속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지난번 동해시에 이어 이번에도 6명의 후보 중 4명을 고발 조치하는 등 시종 단호한 자세로 선거를 관리한 것은 선관위의 독립성과 권위확립의 전통을 축적한 것으로 본다.
비록 이번 재선거의 과정이 크게 혼탁했지만 유권자의 양식 있는 투표로 혼탁에 대한 응징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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