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분단시대 사상적 갈등 재조명|시대변화 따른 지식인의 좌절 평가 민족문학 나아갈 길에 이정표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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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살다간 한국근대문학의 두 거봉 채만식과 팔봉 김기진의 문학전집이 15일 각각 완간됐다.
문학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두루 체험했던 팔봉이나 끝까지 비판적 사실주의를 견지, 순수문학과 경향문학진영에서 동시에 소외돼왔던 채만식의 전집 완간은 지난해 7·19납·월북문인해금 조치이후 또다시 문학에 있어서 이데올로기문제가 되살아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사하는바 크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1986년 여름부터 기획된 『채만식전집』은 전10권에 장편 9편, 중편 8편, 단편60편, 콩트·동화 9편, 희곡28편, 평론31편, 수필 77편등 총3백24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편집위원으로는 전광용(작고·서울대인문대), 이선영(연세대 문과대), 염무웅(영남대 문과대), 이주형(경북대 사대), 최원식(인하대 인문대)교수및 정해렴씨(창작과 비평사편집고문)가 참여했다.
『채만식전집』은 채만식의 전작품을 수록한다는 전제아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40여편도 새로 발굴, 실었으며 특히 친일적 작품 장편 「여인전기」도 실어 그의 전모를 살필수 있게했다.
1902년 전북옥구에서 태어난 채만식은 1925년 단편 「세길로」로 『조선문단』3호를 통해 문단에 나온이래 「탁류」「대평천하」「금의 정열」등의 주요 장편을 잇따라 발표하며 식민지하의 민족적·사회적모순을 파헤쳐갔다.
해방후에는 일제말 자신의 친일문학에 대한 솔직한 자아비판인 중편「민족의 죄인」및 단편 「논이야기」「도야지」등을 발표하며 당대의 현실을 파헤치다 6·25직전 페결핵으로 타계했다.
채만식이 문학을 통해 자기시대의 충실한 증인으로 당대의 중대한 문체들을 통찰함으로써 우리역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려했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에서 그의 증언 내용은 부정의식으로 구체화될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정의식은 특유의 풍자·반어·역설의 수법으로 나타나 비판적 리얼리즘을 개척해 나갔다.
문학평론가 백악청씨(서울대교수)는 『채만식의 작품이 납·월북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데도 해금조치에 따라 그늘에 묻힌 감이 없지않다』며 『비판적 사실주의와 프로문학의 차이점 구명및 탄탄한 민족문학의 확립을 위해 앞으로 채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행해져야 할것』이라고 밝혔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총6권으로 완간한 『김팔봉문학전집』은 1권에는 이론과 비평을 내용별로 분류해 연대순으로 수록했고 2권은 문단회고록과 개인문필활동회고및 인물평을 연대순으로 수록했다.
3권은 장편소설을, 4권은 단편소설과 초기수필을 비롯한 일제시대 문학활동 전체를,5권은 해방전후의 문화관계에 대한 글을, 6권은 단편적인 수필을 비롯한 잡문들을 실었다. 편집은 문학평론가홍정선씨(한신대 교수)가 맡았다.
1903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팔봉은 1923년 『개벽』에 시「애련모사」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팔봉은 그해 9월부터11월까지 『개벽』에 「클라르테운동의 세계화」란 평론을 발표하면서 국내 최초로 식민지 지배논리를 극복해나가기 위한 계급문학을 주창했다. 이러한 주장이 문단의 호응을 얻게되자 팔봉은 경향문학을 주도하며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카프) 이라는 사회주의 문예운동단체를 결성했다. 일제하의 계급문학은 처음에는 식민지지배를 극복하기위해 주장됐으나 점차 계급이데올로기에만 얽매여 예술성을 상실해갔다.
팔봉은 계급문학의 예술성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촉구하며 예술대중화론을 내세워 독자와 괴리돼 있는 계급문학의 기반확보에 노력했다. 팔봉의 이러한 주장은 이념을 앞세우는 카프내부이론가에게 비판을 받게된데다 일제의 탄압으로 1935년 카프가 해산되자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전환, 계급문학에서 벗어났다.
그후 팔봉은 소설창작에 전념, 이념을 배제한「해조음」「통일천하」「군웅」등 역사소설을 집필했다. 6·25때는 인쇄소를 경영하다 악덕부르좌로 인민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자유주의 문학수호에 앞장섰다. 팔봉은 5·16후재건국민운동중앙회 회장등을 역임하며 역대정권아래서 사회활동에 참여하다 85년 타계했다.
팔봉의 60년간 글쓰기를 통해 정치적 변화에 빨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지식인의 정신사적 궤적을 그려볼 수있어 흥미롭다.
이런 측면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김팔봉문학전집』을 통해 『한 지식인이 좌절할수 밖에 없었던 현대사의 비극』을 반성할 수 있으며 특히『팔봉이 온몸으로 체험했던 이데올로기의 충격에 휘몰린 현 문단에 중요한 자료로 기능할 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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