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낀 정당논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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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창극 (정치부 기자)>
공안정국의 공방과 영등포 을 재선거 등으로 정국이 끓고 있는 가운데 임수경 양과 문규현 신부가 15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이들이 북한에서 연출했던 여러 가지 행동을 TV등을 통해 보면서 뜻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그러던 차에 북한은 휴전협정의 명백한 위반인줄 뻔히 알면서 이들을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내몰아 고의적으로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이를 파기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의 이러한 천둥벌거숭이 같은 행동은 유엔사의 문제제기 여하에 따라 국제문제화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맞아 여야 각 당은 성명을 발표했다. 민정·민주·공화당의 성명은 북한과 임양·문 신부의 그러한 자세가 오히려 통일을 저해한다는 요지였다. 평민당만 성명의 내용과 겨냥하는 방향이 달랐다.
공안정국의 당사자로 영등포 을 재선거에 당의 운명을 걸었다고 하는 평민당의 특수한 사정을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명의 핵심이『87년 대통령선거 당시 투표 이틀을 앞두고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입국시켜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정부가 이제 영등포 을 재선거 사흘을 앞두고 임양을 돌연 입국시킨 저의를 의심한다』는 것은 범상한 일은 아니다.
임양의 귀환을 영등포 을 재선거 승리를 위한 정부의 정치 공작적 소산이라고 보는 관점이 깔려있다. 북한이 지난7월말 임양을 판문점으로 데려와 쇼를 하고 돌아간 뒤 8월15일 광복절이라는 시점을 택해 2차로 귀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북한측의 발표로 오래 전에 알려져 있던 일이다.
따라서 이날의 귀환은 예고됐던 것이고 북쪽의 자의로 결정됐다는 것을 의심할만한 증거가 별로 없다.
우리 정부입장으로 볼 때도 판문점을 유엔사가 관리하고 있어 혹시 대외적으로 미군 등이 이 사건에 개입된 것처럼 비쳐질까 걱정하여 북한이 제발 판문점만 피해주기를 기대하며 북한측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강한 내용의 성명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정당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반영하는 공식기구다. 그런 만큼 정당성명은 무게가 있고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관행을 보면 각 당은 당리당략에 따라 할 소리 못할 소리를 구별치 않고 즉흥적으로 성명에 담았던 예가 비일비재했다.
선거가 아무리 중요하기로서니 정당이 성명을 통해 국민을 오도한다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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