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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실무협상 ‘뉴페이스’ 김명길은…“정확하고 만만치 않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월 20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주베트남북한대사관에 김명길 대사가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20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주베트남북한대사관에 김명길 대사가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새로운 대미 실무협상 대표로 알려진 김명길(60) 전 베트남주재 북한 대사에 대한 국내외 외교 당국자들의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북·미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북한 태도에 따라선 이르면 이번 주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미 당국자 자택 방문해 토론도” #누가 나오건 협상재량권은 “글쎄”

김 전 대사가 대미 외교전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는 2006~2009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로 있던 시기다. 당시 한국 외교부의 ‘북핵라인’은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임성남 북핵기획단장(현 아세안대표부 대사)에, 워싱턴 주미 대사관의 위성락 정무공사(전 러시아대사)가 ‘원 팀’이었다. 공교롭게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2007~2008년 주유엔 대사로 있었다.

“겉모습만 봐선 북한 사람 같지 않았다”

천 전 외교안보수석은 “노무현정부 당시엔 남북회담이 많아 김명길 당시 차석대사를 가끔 봤다”고 회상했다. 천 전 수석의 카운터파트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었고, 김 전 대사가 차석으로 회담에 종종 배석했다고 한다.
천 전 수석은 “항상 깔끔하게 차려입고 말끔했다”며 “겉모습만 봐선 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천 전 수석은 김계관 부상과 주로 대화를 나눴고, 김 전 대사는 배석했을 뿐 서로 말을 주고받진 않았다고 했다. “북한체제 특성상 위계질서가 강한 탓도 있고 차석이 대화에 끼어들 군번은 아니었다”면서다.

[2015.11.09 김성룡]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 세션1:지역 안보의 과제/ 천영우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

[2015.11.09 김성룡]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 세션1:지역 안보의 과제/ 천영우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

천 전 수석은 “남북회담 때 김계관 부상에 배석자는 김명길, 이근(당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현학봉(부국장) 등이 번갈아 들어왔는데 당시 통역이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거의 빠짐없이 들어왔다”며 “남북회담에 통역이 필요없는데도 최 제1부상이 항상 들어와 북한에서 힘 좀 깨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최선희. [연합뉴스]

최선희. [연합뉴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주유엔 대사로 있던 2007~2008년은 김 전 대사의 뉴욕 근무 시기와 겹친다. 그러나 천 전 수석은 “우리 주유엔 대사는 유엔대표부만 지휘해 북측 인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며 “외교부 북핵 본부와 주미 대사관이 주로 북측 인사를 상대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북핵 6자회담 당시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와 천영우 우리 측 수석대표. [연합뉴스]

2006년 북핵 6자회담 당시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와 천영우 우리 측 수석대표. [연합뉴스]

“정확하고 명료…만만치 않았다”

김 전 대사와 직제상 급이 맞아 자주 만났던 이는 위성락 당시 주미 대사관 정무공사였다. 위 전 대사는 “유엔북한대표부는 현지에서 북한의 유일한 대미 채널인 만큼 김 전 대사는 차석 직급이지만 미국 업무의 ‘포인트 맨’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가깝게 지내고 많이 만났다”며 “북한 외교관 특유의 터프함이 있지만 거칠기보다는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설명하는 편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고, 정확하고 명료한 인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변선구 기자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변선구 기자

당시 김 전 대사의 현안 중 하나가 2005년 9월 터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 수습이었다. 미 재무부가 BDA를 북한 불법자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의 2500만 달러 예금이 동결되면서다. 사실상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이 동결된 것으로, 당시 사태 해결에 나선 김계관 부상이 “피가 마른다”고 미국에 항의한 일화는 유명하다.
BDA 사태가 터지고 1년쯤 뒤 유엔대표부로 발령 난 김 전 대사도 사태 해결에 투입됐다. 위 전 대사는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현안을 다뤘는데, 직급상 김 전 대사는 힐 차관보 아래 부차관보를 주로 만나 협의했다”며 “무난하게 일 처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 당국자 자택 방문해 토론도…열정적 인물

김 전 대사를 상대한 미국 외교 당국자들은 “미국에 대한 이해가 높고 열정적인 인물”이란 평가를 내놨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15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2009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에 김 전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핵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따른 방어적 목적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미국이 대북 접근법을 바꿀 경우 핵 프로그램에서 인권 문제에 이르는 모든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메시지를 정확히 북한에 전달하고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이해하던 외교관이었다”고 회상했다. 자누지 대표는 당시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정책 국장을 지냈다.

2019년 2월 26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방문 당시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김명길 전 대사의 모습.[연합뉴스]

2019년 2월 26일,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방문 당시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김명길 전 대사의 모습.[연합뉴스]

앞서 김 전 대사가 1996년 유엔 북한대표부 참사관 시절, 그를 상대한 미국 관리는 에반스 리비어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이었다. 그는 후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까지 지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VOA에 1998년 말 버지니아 자택에 김 전 대사를 초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근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와 참사관이던 김 전 대사의 워싱턴 방문을 이례적으로 승인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두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둘 다 전문적이고 박식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미 학계 세미나도 자주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미 정계·학계는 김 전 대사의 역량에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서 기존 대표단에 비해 얼마나 재량권을 갖고 임할지 대해선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김 전 대사가 북한 실무협상팀을 이끌더라도 북한 지도부 입장을 대본처럼 읽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위 전 대사도 북·미 실무협상 전망에 대해 “김 전 대사라는 새로운 인물이 왔지만 변수가 되긴 어려울 것 같다”며 “비핵화 문제는 결국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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