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창구 닫고 "일전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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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총재 입건으로 공안정국이 절정에 이르러 정부·여당과 평민당이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여권 전반에 흐르는 강성기류가 이번 사건을 끝까지 밀어갈 태세이고 김 총재의 정치사활이 걸린 평민당은 일단 장외투쟁으로 나서고 있는 데다 영등포 을구 재선거까지 겹쳐 대치상태는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정부측은 김 총재 사건을「정치적 조작」이라고 하는데 펄쩍 뛰면서 끝까지 법대로 하겠다는 자세다. 명백한 증거에 따라 수사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면 기소까지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총재를 입건한 혐의내용은 ▲서 의원 방북의 조기인지 및 불고지 ▲방북사실의 은폐 ▲북한공작금의 수령 등인데 이에 대한 증거가 단순히 서 의원의 자백에 의존한 것만이 아니라 상당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때 김 총재의 자금지원이 김 총재가 시내 G호텔에서 사용한 수표와 문 목사가 사용한 수표가 일련번호임을 확인, 시인을 받았듯이 이번 혐의내용들도 서 의원의 자발적 자백이 아니라 주변수사로 얻은 방증자료를 서 의원에게 들이대 시인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이미 검찰이 밝힌 내용 외에도 더 증거를 수집하고 있으나 결정적 증거확보를 위해 발표를 유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비록 증거에 굴한 것이기는 하지만 서 의원이 입을 열기 시작한데서 검찰은 더욱 자신을 갖고 있다는 것.
당국이 이처럼 강하게 밀어붙이는데는 여권 내 전반적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군부와 재계에서 강한 의사표시를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따라 청와대측이 수사와 정치를 철저히 분리시키기로 했다.
따라서 민정당 측이 공안정국의 정치권내 수렴을 위한 총무회담과 중진회담 등을 제의해 놓고 있으나 사실 대화의 폭에는 한계가 있다.
한 당직자는『이 시점에서 김 총재 문제를 정치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민정당은 여권 내 보수·강경 세력의 큰 반발을 받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치권이 간여치 못하는 상황에서 공안정치가 당분간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민정당 측은 이번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되든 김 총재는 사건을 조작·은폐한 것으로 더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후 물러난 것도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 때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검찰수사 내용을「허위조작」이라고 일축한 평민당은 노 정권과의 협력관계를 단절, 전면전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했다.
일요일인 13일 아침 긴급대책회의는『노 정권과의 협력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결론짓고 전면투쟁 의지를 모은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14일 총재단회견에서도 노 정권과의 협력관계 청산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을 외치고 나섰다.
이의 단계적 조치로 기존의 대여창구를 폐쇄하고 대화제의를 거부했다.
이 같은 정치투쟁적 대응은 지난번 안기부 구인수사 때의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현재로선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당장 장외의 극한투쟁으로 나서기보다 아직은 경고조의 결전 예비단계에 머물러 있다. 검찰발표를 영등포 을구 재선거용으로 평가 절하시켜 대여전선의 폭을 여기로 압축시키려 하고있다..
구체적 증거가 깔린 듯한 검찰의 공세를 저지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영등포선거를 활용, 위기탈출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선거의 승리를 국민적 심판에 의한 결백입증으로 몰고 가 검찰수사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총재는 중단했던 영등포선거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보라매집회 같은 장외의 움직임에 따가운 시선이 한쪽에 있는 것을 감안,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대응은 삼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같은 대응은 무엇보다 검찰의 후속조치에 대한 경계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검찰 쪽에서『발표하지 않은 증거가 있다』는 소문이 계속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섣불리 극한의 몸짓을 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평민당은 안기부 구인 이후 공안정국이 마무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했다가 기습당한 처지여서 노 정권의 정국구도 방향을 파악하고 수사의지의 강도를 타진할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로 미뤄 평민당 대응의 구체적 모습은 영등포선거 결과에 따라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이길 경우 5공 청산문제로 국면전환을 꾀해 검찰수사의 포위망을 뚫으려 할 것이다.
반대로 공안정국의 수렁에다 선거패배까지 경칠 경우 극한투쟁 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달 말로 예정했던 전당대회를 연기하고 비상체제를 강화키로 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럴 경우 김 총재 불구속입건의 증거인 서 의원의 자백을 무시해버리는 태도를 취하고 한편으론 보라매집회와 유사한 군중집회를 열어 세 과시로 배수진을 칠 것으로 보인다.
26일 부평 역에서의 시국대강연회가 이미 예고돼있다.
따라서 영등포 선거 때까지라는 시한이 평민당에 주는 의미는 여러모로 크다.
김 총재의 대응은 일단 선거를 통한 국면타개 쪽으로 압축되고 있지만 구체적 증거가 뒤따를 경우 대응의 폭은 확대되고 사활을 건 장외전면전으로 일단 투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보균·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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