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청문회가 무슨 소용”…서울지역 자사고 교장들 반발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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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자립형사립고 재지정 여부에 대한 운영성과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자립형사립고 재지정 여부에 대한 운영성과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청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이미 지정 취소하겠다고 결론 내렸는데 말입니다. 탈락한 학교들끼리 다 같이 청문회 참석하지 말자는 얘기도 나옵니다.”(서울 A자사고 교장)

“서울시교육청에서 세부항목 점수 공개를 마치 자사고에 대한 배려처럼 얘기하는 게 당황스럽습니다. 처음에 결과를 공개할 때 세부항목 점수도 같이 알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평가위원과 지정운영위원 명단도 공개해야 합니다.”(서울 B자사고 교장)

서울시교육청이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8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한 해 세부항목 점수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학교 측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청문 절차 이후 지정 취소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적고, 평가위원 등에 대해선 여전히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서울시교육청은 11일 “이번 평가에서 탈락한 학교들이 청문회를 준비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32개 지표에 대한 세부점수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 초까지는 학교 측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의 재지정평가 결과를 공개하면서 총점과 영역별 점수, 평가위원의 종합의견만 전달해 ‘깜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교육청의 평가는 6개 영역 12개 항목 32개 지표로 돼 있다. 학교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32개 지표에 대한 평가점수가 필요하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폐지 반대, 조희연 교육감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폐지 반대, 조희연 교육감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자사고들은 여전히 청문회 참석에 회의적이다. 청문을 통해 지정취소 결과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다. 앞서 지난 9일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은 평가 결과 공개 브리핑에서 “청문을 통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정취소 유예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자사고들은 “깜깜이 평가에 이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답변만 해) 청문”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어떻게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시간을 들여 이를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며 “서울시교육청의 평가가 ‘자사고 폐지’를 위해 악의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학교들은 서울시교육청이 평가위원 등을 비공개하는 것도 불만이다. 올해 시교육청의 자사고 평가(100점 만점) 중에 57점 정도가 평가위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서다. 정량평가에서 만점을 받아도 평가위원들 마음대로 정성평가에서 점수를 깎으면 기준점수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

서울 자사고들의 반발이 계속될 경우 이달 22~24일로 예정된 청문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일 이뤄진 부산교육청의 청문회도 해운대고가 자사고 지정 취소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청문 연기를 요청하다 퇴장하면서 파행됐다. 부산교육청은 이달 23일 해운대고에 대한 2차 청문을 진행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평가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청문은 행정처분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인데 학교 측에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자사고가 시교육청의 평가 결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며 “교육청과 자사고 간의 갈등에 피해를 보는 건 학생·학부모”라고 비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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