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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16자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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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의 대외정책 원칙은 숫자와 인연이 많다. 마오쩌둥 시대 이래의 기본 방침은 '평화공존 5원칙'. ①영토와 주권의 상호 존중 ②상호 불가침 ③내정 불간섭 ④평등과 호혜 ⑤평화공존이다. 1954년 4월 인도와 맺은 통상.교통 협정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두 달 뒤 저우언라이 총리가 네루 인도 총리와의 공동성명에서 재확인했다.

이 원칙은 신생국 중국을 비동맹권의 맹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이듬해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가 채택한 '평화 10원칙'의 모태가 됐다. 외교부장을 겸직한 저우언라이의 수완 덕분이다.

이 원칙은 중국에 '제3의 길'을 뚫게 해준 창. 동시에 방패였다. 서방이 인권 문제 등을 걸고 나오면 ③번을 빼든다. '5원칙'은 헌법상 조항. 수교 문서, 주요 조약에는 반드시 들어간다. 92년의 한.중 수교 공동성명도 예외는 아니다.

냉전 붕괴 후 외교 노선은 16자 원칙. '냉정관찰, 침착대응, 도광양회(韜光養晦), 결부당두(決不當頭)'다. 91년 덩샤오핑이 내린 지침이다.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직후다. ('장쩌민의 중국') 앞의 여덟 자는 탈냉전에 대한 분석.대처 방식이다. 도광양회는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결부당두는 '결코 선두에 서지 말라'는 뜻이다. 수세(守勢)외교다. 장쩌민 시대는 그 맥을 이었다.

현 후진타오 체제의 화두는 '화평굴기(和平起)'. 평화적으로 우뚝 선다는 의미다. 중국 위협론을 잠재우고 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화평'보다 '굴기'가 강조되면서 2년 전부터 정부의 공식 언급에서 사라졌다. 대신 나온 것이 '화평발전'. 최근엔 '유소작위(有所作爲)'가 부쩍 눈에 띈다. 필요한 일에 적극 나서 의지를 관철한다는 전략이다. 중국판 개입 정책이다. 6자회담은 그 산물이라고 한다.

중국 외교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미 체면은 구겼다. 원자바오 총리의 공개 경고를 북한이 무시했다. 만회하는 길은 그 해법을 내놓는 것뿐이다. 그 수단이 당근이든 채찍이든. 그렇지 않으면 '중국 역할론'은 설 땅을 잃는다.

중국의 대북 관계 기본 원칙은 16자다.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다. 장쩌민이 2001년 북한과 합의한 방침이다. 지난해 후진타오의 방북에서도 확인됐다. 새로운 시기.정세.수준(三新)하에서 마련된 원칙이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 대북 외교 방침을 내놓는가.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