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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백악관에서 그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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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그린까지/돈 반 나타 주니어 지음, 정승구 옮김/아카넷, 1만8천원

상대를 알려면 내기를 해보라는 말도 있다. 바둑이든, 장기든, 화투.포커 같은 도박이든, 승부가 걸린 게임에선 한 개인의 성품이 곧바로 드러난다. 성급한 사람, 느긋한 사람, 정직한 사람, 치사한 사람 등.

'백악관에서 그린까지'는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골프를 든다. 공을 치는 스타일이 술자리 안주까지 된 요즘 세상에서 또 하나의 안주상을 차린 셈이다. 게다가 도마에 오른 사람들이 역대 미국 대통령이니 귀가 솔깃해진다.

이 책은 대중적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호기심을 자극하되 경박하지 않고, 미국 정치판을 해부하되 절대 무게를 잡지 않는다. 윌리엄 태프트부터 조지 W 부시까지 지난 1백년간 미국을 통치했던 대통령 17명 가운데 골프를 즐겼던 대통령 14명을 다루며 골프와 정치의 상관 관계를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로 퓰리처상을 세번이나 수상한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활달한 문체 덕분에 속도감 있게 읽힌다.

저자는 꽤 신랄하다. 예컨대 클린턴 대통령은 무참하게 뭉개진다. 저자는 1997년 클린턴이 필생의 목표였던 80타를 깨고 79타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파고들어가, 결국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점을 밝혀낸다. 저자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다.

"클린턴 태통령은 학창 시절, 대마를 입에 물기는 했지만 들이마신 적이 없었으며, 르윈스키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가 골프 점수라고 해서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골프는 열렬한 골프 애호가였던 아이젠하워도 괴롭혔다. 그는 48년 한 유명 골프장에 있던 키 큰 미송나무 때문에 제대로 공을 치지 못하자 아예 이 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운동을 벌일 정도였다. 지금 그 나무는 '아이젠하워 나무'로 불리고 있다.

케네디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 골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우아한 스윙을 했다. 하지만 그는 백악관에 머물렀던 1천여일 동안 골프를 한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던 60년 당시만 해도 골프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지 W 부시는 지난해 여름 휴가 중 흥건히 젖은 골프 셔츠를 입고 TV에 나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가능성이나 악덕 기업인 처벌에 관한 소식을 발표했다. 그만큼 세상이 변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제럴드 포드.우드로 윌슨.로널드 레이건.리처드 닉슨.린든 존스 등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관련 에피소드가 풍부하게 소개된다. 베일 속에 가려진 백악관의 정치 세계도 드러난다.

앨 고어.밥 돌.마이클 듀카키스 등 골프를 치지 않은 대통령 후보들은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했고, 지난 1백년간 골프를 치지 않았던 세 명의 대통령인 후버.트루먼.카터가 재선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재미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재로 글을 쓴다면 꽤 흥미롭겠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전문>
골프장의 부시 대통령 부자(左). 앞에 선 아들의 모자엔 43이, 아버지 모자엔 41이 적혀 있다. 각각 43대, 41대 미국 대통령을 뜻한다. 골프 경기에서도 거짓말을 많이 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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