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준호의 과학&미래

병역특례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1973년 1월 첫 입학시험을 치르고 석사과정 신입생을 선발했다. 549명의 지원자가 몰려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유학을 가는 대신 한국에 남아 과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겠다는 과학기술 인재가 그만큼 몰린 셈이다. ‘두뇌 유출 방지’라는 설립 목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과학원 학생들에게 정부는 병역과 등록금 혜택을 줬다. (…) 이렇게 배출된 연구자들은 오늘날 정부 출연 연구소는 물론 민간 연구기관의 핵심 두뇌이자 주축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중앙일보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 중 KAIST 설립 당시의 기억을 적은 부분이다. 이공계 대학 인재를 대상으로 한 병역특례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했다. 물론 그땐 병역자원은 넘쳤고,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적었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병역특례는 이공계 대학원생뿐 아니라, 체육·문화 등의 분야까지 확대됐다. 최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까지도 인정해주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 자원 급감이다. 설상가상, 역대 정치권의 표 얻기 여파로 군복무기간까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내년부터 육군과 해병대는 18개월, 예전 방위병 수준이다. 인구 급감에 포퓰리즘 폭탄까지 맞은 국방부는 속이 탄다. 국방부의 병역 대체복무 폐지 또는 대폭 감축 계획은 그런 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세기 전 이 땅의 상황은 또 다른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그 시절 싹을 틔워 산업화를 이끌었던 동력들은 하나둘 꺼져가는데, 새로운 성장엔진은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인재라는 인공지능 전공자들은 외국 주요기업들이 싹쓸이하고 있다. 박사급 전문연구요원 1000명, 석사 졸업생까지 합쳐봐야 2500명의 국가 우수인재를 병역자원 급감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어야 할까. 최종 발표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청와대가 국방부를 달래고 과기계의 의견을 수용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