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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일 장기전” 황교안 “힘 보태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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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청와대가 일본의 사실상 ‘통상 보복’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총리실 등 전 부처와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까지 국익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청와대 주도로 정부와 기업, 정치권을 잇는 대일(對日) 스크럼을 구축하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황 “정부 대응에 할 말 많지만 #국민·기업 피해 막는데 역량 결집” #일본엔 “보복 확대 땐 파국” 경고 #청와대 “정치권 한목소리 내야”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정치적 문제를 통상을 활용해 공격하는 상황에서 통상으로 맞대응하는 방식은 오히려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게 되고 한국 기업의 피해를 오히려 키울 수 있게 된다”며 “특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에까지 대비하려면 정부와 재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유한국당도 이날 긴급대책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즉시 모든 보복 조치를 거둬들이고 양국 관계 정상화에 나서라”고 촉구하면서 우리 정부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교안 대표는 “경제 보복 확대는 양국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최악의 결정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며 “우리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뒤늦은 대응에 정말 할 말이 많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 국민과 기업의 피해를 막는 데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만큼 우리 당도 정부의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국당 최고위원은 “외교 부실 책임론만 제기하기엔 이번 사안이 굉장히 엄중하다는 당내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황 대표의 측근도 “일본이 보복을 계속할 경우 한국 경제는 파국을 맞게 될 거란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도 반영했다”고 했다. 한국당 차원에선 ▶한·일 의원 외교를 통한 채널 확대 ▶청와대와 여야가 함께하는 경제 원탁회의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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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우선적으로 정부 내 소통과, 정부와 기업 간의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6일 전 부처 장관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4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사실상 ‘정치 보복’으로 규정했다. 7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인들을 만났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향후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고만 알렸을 뿐 대화 내용이나 참석 대상 등에 대해선 함구했다.

최재성 “일본 사실상 경제침략 선언한 것” 대통령 대응 줄이고 민주당이 공세 앞장 

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실제 피해 상황과 보복의 장기화 가능성에 따른 기업의 여력 등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라고 전했다.

부총리와 정책실장 등 ‘경제 투톱’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10일께 30대 기업 총수를 대상으로 한 청와대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실적 어려움을 청취하는 한편 단기·장기에 걸친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일본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대응 메시지가 나오는 자리는 아니다”고 전했다.

청와대 안팎의 전언을 종합하면 몇 가지 대응 흐름이 나타난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최대한 아낀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도하는 도발에 직접 대응하면 자칫 전면전까지 감수해야 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한 국제 여론과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의 도발에 대한 일본 기업과 여론의 방향까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결단을 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원론적 입장 정도만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를 향한 공세는 더불어민주당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가칭 ‘일본 경제 보복 대응 특위’가 발족한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최재성 의원이 위원장을 맡는다. 최 의원은 중앙일보에 “일본이 단순한 경제 보복이 아닌 사실상의 경제 침략을 선언한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일(對日) 디스플레이 수출 금지 조치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수세적으로 대응할 경우 국내 기업에 대한 피해만 커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본격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한·일의 정부 대 정부 간 논의는 당장 본격화될 것 같진 않다. 대신 기업 차원의 노력을 지원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정책실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기업의 어려움을 청취하는 자체가 한·일 기업 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협상에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청와대에선 당분간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일 위안부 합의 백지화 등으로 한·일 갈등을 고조시킨 책임이 있는 문 대통령이 직접 푸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뒤로만 물러나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7일 KBS 프로그램에 출연, “지금이야말로 정상 간에 같이 얼굴을 맞대고 진짜 격의 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같이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 곪아 터지게 돼 있으니 환부를 빨리 도려내야 한다”고 했다.

강태화·김준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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