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총수들 만난 날, 이재용·신동빈 일본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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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 현지의 경제계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불화수소·포토레 지스트·폴리이미드)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 현지의 경제계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불화수소·포토레 지스트·폴리이미드)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본격화하면서 한국 정부가 재계 총수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7일 주요 그룹 총수와 만나 대응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0일께 30대 그룹 총수와 간담회를 하기로 했다.

홍남기, 비공개 오찬 함께 참석 #삼성·롯데 총수 직접 문제해결 나서 #문 대통령도 10일 대기업 간담회 #재계 “기업 아닌 일본 정부 만나야”

7일 재계에 따르면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이날 대기업 총수와 비공개로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후 6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의 출국 시간이 당초 예상 대비 늦어지면서 이날 오전 김상조 정책실장 또는 청와대·정부 관계자와 만난 뒤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김기남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경영진과 수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일본 출장 계획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수출규제를 시작한 이른바 반도체 3대 품목(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생산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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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석유화학 부문에 집중 투자를 시작한 롯데의 속마음도 편치 않다. 한국은 기초유분·석유화학 중간제품 수입량의 4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도 이날 일본 재계 인사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번 청와대·정부-그룹 총수 회동은 김 실장 측에서 직접 연락해 성사됐다. 홍 부총리와 함께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듣고, 정부 지원 방안 등 대응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다.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지난 2일에도 윤부근·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여론 악화에 다급해진 청와대와 정부가 기업과의 스킨십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경제계는 그리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일본은 치밀하게 준비해 왔는데 그동안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강구해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의구심이 역력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도, 정부도 시급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이제 와서 머리를 맞대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정부는 일본의 보복성 짙은 수출규제를 예견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떤 대응책을 강구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이날 만남은 오는 10일께 청와대에서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그룹 총수의 간담회를 준비하는 성격도 갖는다. 문 대통령 간담회에 앞서 경제계 의견을 수렴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30대 그룹 총수와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정부의 지원 방안이나 대응책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정부의 오찬 회동 방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이 아닌 정부가 초래한 사태인데, 기업인 처지에서는 정부와 만나 어떤 구체적인 의견을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견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늦은 시기와 관련 없이 정부와 기업이 만나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은 기업이 초래한 문제가 아니라 정권이 불러온 것과 다름없는데, 정부는 기업을 만날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직접 만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원석·김영민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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