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추격, 유령회사 잡았다···법인세 46억 찾은 남대문세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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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당국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국내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독일계 투자회사와 8년여에 걸친 법정 싸움에서 승소했다. 5번의 재판 끝에 46억원의 법인세를 더 걷게 됐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주식회사 서울시티타워가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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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회사는 법인세 5%' 조항 악용해 유령회사로 투자

독일계 투자펀드인 TMW가 만든 유한회사 GmbH 1,2는 2003년 서울시티타워에 투자했다. 이후 2006~2008년 사이 발생한 수익에 대한 배당금 1316억여원을 받았고, 법인세로 84억여원을 냈다. 한ㆍ독 조세조약에서 독일 회사에는 최대 5%까지만 세금을 내도록 한 합의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관할 남대문세무서는 GmbH 1,2에 우리나라의 법인세율 25%를 적용해 세금을 더 물렸다. GmbH가 한ㆍ독 조세조약에 따른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위해 TMW가 세운 페이퍼컴퍼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조세조약에 따른 5% 세율은 독일 법인에만 적용된다. 독일 펀드가 직접 투자하면 15% 세율을 적용받거나 25% 세율을 그대로 내는 경우도 있다. 추가로 부과된 법인세는 약 185억원이다.

서울시티타워는 이에 반발,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과세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서울시티타워의 손을 들어줬다. GmbH 1,2가 독립된 주체로 투자를 해온 점 등을 고려해 유령회사가 아닌 실체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직원도 실체도 없는 회사로 세금 수십억 탈루

그러나 2013년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이를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GmbH 1,2의 구성이나 활동 내용 등을 뜯어보면 오로지 조세 회피를 위한 페이퍼컴퍼니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해당 회사의 주소나 연락처, 이사가 TMW와 모두 똑같고 다른 직원도 없는 등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티타워에 투자할 당시 투자금의 출처도 TMW였으며 그에 따른 배당금도 대부분 TMW로 보내졌다.

이에 앞서 GmbH 1,2가 서울시티타워 건물을 인수하면서 벌였던 소송도 결정적 증거가 됐다. 2007년에도 TMW는 비슷한 방식으로 GmbH 1,2를 통해 건물을 인수해 취득세를 감면받으려다가 적발돼 소송에서 끝내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GmbH 1,2가 표면적인 사업실적과 인적ㆍ물적 조직이 없어 그 자체로는 독자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거나 사업목적을 수행할 수 없는 명목상의 회사에 불과하다”며 페이퍼컴퍼니라고 판단했다. 인수 당사자였던 GmbH 1,2가 정작 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점도 재판 기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법인세 84억→130억 징수…46억 더 걷어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파기환송심도 GmbH 1,2가 페이퍼컴퍼니라고 인정,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세율은 25%와 15%를 나누어 적용하도록 했다. 조세조약에서 구성원 거주지가 독일인 펀드에는 15%의 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TMW에는 일부 독일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원래 세무 당국이 정당하게 걷어야 할 법인세는 130억여원이라고 최종 판단했다. 1·2심에서 결정했던 84억여원보다는 46억원가량 많이 걷게 된 것이다. 5번에 걸친 소송 비용도 절반씩 부담하게 돼 실제로 아낀 세금액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조세조약 규정을 악용한 조세 혜택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5년에도 세무 당국은 TMW가 페이퍼컴퍼니인 TMW한솔을 만들어 투자하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덜 내자 4년에 걸친 소송전을 벌여 승소했다. 이때는 679억여원을 추가로 걷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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