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사일 후폭풍 물밑 외교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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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11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는 '북.중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 체결 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으며 15일까지 머물 예정이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북한 미사일 사태 해결을 위해 베이징~서울~도쿄 순방을 마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1일 귀국하려던 발길을 돌려 다시 베이징을 찾았다. 이날 오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그는 기자들에게 "중국이 아주 중요한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 매우 중대한 단계에 와 있다"고 말했다.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그는 "(중국 측의) 요청을 받고 왔다.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교적 프로세스에 대해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앞서 6자회담 중국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북한과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평양을 방문했다.

힐 차관보는 하루 이상 베이징에 머물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힐 차관보가 갑자기 다시 베이징을 찾은 것은 사태 해결에 모종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11일 외신과의 회견에서 "현 시점에서 우리의 바람은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6자회담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북.중.미 3자접촉 시작됐다=힐 차관보의 베이징 재방문은 미사일 사태가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한 이래 최초로 중국을 중재자로 미국과 북한이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3자접촉은 평양에서 우다웨이 부부장과 북한의 김계관 부상의 논의로 시작된다. 미사일 해법을 둘러싼 북.중 간의 논의 내용은 외교전문을 통해 고스란히 베이징에 전달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 미국이 협의하는 구조다.

또 힐 차관보 차원에서 결심할 수 없는 사안은 외교채널을 통해 워싱턴의 국무부와 백악관에 전달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된다.

◆ 북, '금융제재 해제하면 6자회담 복귀'=관측통들은 북한이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공식 방문 중인 김형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미국이 금융제재를 해제하면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한성렬 유엔 차석대사도 6일 "대북 금융제재를 풀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말했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마카오의 한 은행에 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2400만 달러(약 230억원)를 불법 돈세탁 혐의로 동결시킨 바 있다.

◆ 비공식 6자회담 가능성=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0일 기자들에게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는 데) 어느 정도 가망성(some promise)을 갖고 있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라이스 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이 미사일을 추가 발사하지 않고 발사 유예선언을 지키며 ▶6자회담에 복귀하고 ▶지난해 9월의 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한다는 3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고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하면 유엔의 대북 제재안은 철회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에선 중국이 제안한 비공식 6자회담을 북한이 조건부로 수용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후진타오, 북한에 '심각한 우려' 표명=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11일 중국을 방문 중인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한 한반도 정세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후 주석은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양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친선대표단과 면담하는 가운데 "현재 한반도 정세를 복잡하게 만드는 새로운 요인이 나타나 중국은 북한의 이웃나라로서 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북한 대표에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양형섭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조선은 양국과 양국 인민의 친선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중국 측과 함께 조.중 관계의 발전과 조선반도 및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베이징=이상일.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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