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감독 평론가 팬이 한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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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연곡 해변영화학교>
영화계에서는 처음으로 해변영화학교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동해안 연곡해수욕장에서 열렸다.
삼영필름이 마련한 이 자리에는 영화팬 1백여명과 김정진(영화감독)·양윤모(영화평론가)·김진해(중앙대연영과강사)·영화기획자·촬영감독·배우 등 영화관계자 20여명이 함께 어울려 영화의 이론, 영화감상법, 실험영화품평회, 외국영화시사회 등을 가지며 영화전반에 대한 이해와 공간의 폭을 넓혔다.
팬들은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모처럼의 휴가를 이용한 회사원·은행원·의사 등 다양한 직업의 일반인들도 30여명쯤 참가해 대학생들과 더불어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과일정은 첫날 김진해씨의 「영화에 대한 이해」강연, 미국영화 『엔젤하트』시사회와 양윤모씨의 작품해설, 둘째 날에는 역시 양윤모씨의 「재미있게 영화보는 법」강좌와 김정진 감독의 「현장연출의 실제」를 듣고 마지막날에는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팬들 각자의 영화에 대한 견해가 난상토론형식으로 진행됐다.
첫날 강연을 맡은 김진해씨는 영화의 가장 큰 기능은 그 시대시대의 사회상을 필름으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에 맞춰 누벨마그·네오리얼리즘 등 지금까지의 영화사조를 시대별로 소개했다.
김씨는 한국영화도 리얼리즘을 강조한 사회물이 정착되어야 팬들의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뒤 팬들은 김씨와 나눈 토론에서 최근의 심의강화 분위기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대사회발언권을 밟아놓을 우려가 있다는데 대해 의견을 같이 하기도 했다.
이어 방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는 해변 안쪽의 소나무에 매단 스크린을 이용, 『엔젤하트』시사회를 가졌다.
『엔젤하트』는 인간의 본능적 악마성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그린 파우스트적인 작품으로 관객들은 섬뜩한 소재의 영화를 야간해변에서 보는 맛도 피서방법으로는 그만이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영화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라는 양윤모씨의 영화감상법 강좌를 시작으로 한 둘째 날에는 김정진 감독의 「영화연출의 실제」와 현장체험기 소개, 그리고 『엔젤하트』에 대한 관객들의 작품평 발표회 순서로 진행돼 첫날보다 더욱 학구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씨는 쇼트·신·시퀀스·스토리 등 영화의 기본단위와 디졸브·아이리시 인·아이리시 아웃·오버랩 등 장면전환기법 등을 설명하고 이러한 영화적 단위구성과 기술에 따라 극의 흐름과 감독의 작품해석 등을 알아낼 때 한층 더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제작자의 역할, 각 스태프가 하는 일, 연기의 기본 등 실제의 제작과정과 현장에피소드 등 필름 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지막날 관객들간에 벌어진 「영화에 대한 자기견해」시간은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신랄한 비판과 따스한 애정이 엇갈리며 열띤 토론으로 가장 열기가 높았다.
저질에로물의 범람, 당국의 경직된 검열, 관객들의 무조건적 외화선호, 극장들의 스크린쿼타 불이행, UIP등 외화직배에 따른 문제 등 현재 영화계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쏟아지면서 자리를 함께 한 영화전문가들의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호된 질책과 비판이 쏟아졌다.
영화학교에 참가한 학생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경식씨(43)는 『새 프로가 나오면 거의 빠짐없이 영화를 봐왔는데 이번 영화학교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전문지식을 얻게돼 앞으로 영화를 보는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됐다』며 『여름휴가로도 멋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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