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구 고장나 집행 45분 늦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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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형장의 7인 마지막 그 순간>
4일 서울구치소에서 있은 가정파괴범 등 5명에 대한 교수형집행은 오전 8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형구가 고장나는 바람에 45분 정도 지연.
서울구치소는 87년 11월 준공 이후 처음 있는 사형집행이기 때문에 집행전 형구작동을 시험했는데 이때는 이상이 없어 오전 8시 서진룸살롱사건의 김동술을 맨 처음으로 의자에 앉히고 신부기도 등이 끝난 뒤 스위치를 눌렀으나 의자 밑바닥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
이에 교도관들이 자루를 씌워 얼굴이 가려진 김동술을 2m쯤 옆으로 옮겨놓고 40여분 동안 작동상태를 점검하고 전원기구를 손보는 등 고장을 수리.
이 같은 사고로 목숨이 40분 연장된 김동술은 교도관들이 기계를 고치는 동안 『주여 이 몸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며 초조감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20여명의 사형수 가운데 이날 사형이 집행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형수들은 자기들도 형이 집행되지 않을까 신경을 쓰며 하루종일 좌불안석이었다는 후문.
집행이 안된 사형수 가운데 3명은 약간의 물 외에 점심·저녁을 전혀 들지 않았으며 방 바깥만 내다보며 초조해했고 다른 사형수들도 교도관들이 자기들 방쪽으로 올 때마다 눈을 감고 구석으로 몸을 피하는 등 불안해했다고….
○…교도소 측은 완력이 센 김동술이 극한 상황에서 반항하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교도소 측이 평소 허용하던 아침운동을 금지시키자 김은 형집행을 눈치챈 듯 머리를 감고 이빨을 오래 닦는 등 몸단장을 했다는 것. 김은 특히 집행전 『마지막 할말이 없느냐』는 검사물음에 서진룸살롱사건의 대장격인 장진석(28·무기징역확정)을 거명하며 『진석이형은 무기로 감형됐기 때문에 다행』이라며 깍듯이 「존경」의 말을 해 폭력세계의 「의리」를 끝까지 과시. 김은 특히 동료 폭력배들을 천주교호칭인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
○…두 번째로 집행된 고금석은 불교신자로 간간이 엷은 웃음까지 짓는 등 애써 담담한 모습이었고 스님의 종교의식 때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의식한 듯 『저승에서는 좋은 몸을 받아 올바로 잘살겠다』고 다짐하며 애인에게도 『편히 잘살아라』는 유언을 남겼다.
○…천주교신자인 함효식은 비교적 평온한 태도로 집행에 임했는데 『내가 죽어 나 때문에 죽은 아이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뜻밖의 말로 입회자들을 놀라게 하곤 다른 사형수들과 입회교도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강상원은 형장까지 성경을 끼고 갔으며 집행전 입회검사에게 연필과 백지를 달라고 요청, 고향에 있는 강 위치를 적어주며 자신의 시체를 화장한 뒤 이곳에 뿌려달라고 유언.
○…이날 사형수중 다른 모습을 보였던 사람은 시석기.
평소 구치소 내에서 「전도사」로 통할 정도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시는 정작 형장에 도착하자 목사 앞에서 『나는 모든 종교를 거부하는 무신론자』라고 평소 언행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김석기·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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