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받고 '北찬양' 허위 자백한 남성…32년만에 재심서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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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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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과 가혹 행위로 인해 북한을 찬양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남성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26일 대전지법 형사4부(임대호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재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80년 5월부터 1985년 11월까지 아산시 온천동 자신의 집에서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듣는 등 북한을 찬양·고무·동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1987년 7월 A씨에게는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이후 A씨는 지난해 5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도움을 받아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육군 보안부대 수사관에 의해 강제 연행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영장 없이 구금됐다"며 "그 사이 수사관들은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보안부대에서 불법 체포·감금 상태에서 고문 끝에 자기 뜻에 반해 범행을 시인했다"며 "검찰 조사뿐 아니라 원심 법정에서도 이 같은 심리상태가 유지됐을 것으로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야만적인 국가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국가보안법 전과자로 만들었다"며 "32년 전에 멈춰서 있던 피해자의 시간은 법원 판결로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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