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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흘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본인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철언 정무1장관의 방북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마침내 노태우 대통령도 이러한 현상에 우려를 표시하고 민정당도 부인에 나섰으나 야당 측이 비밀접촉의 진상공개를 요구하며 정치문제화하고 나서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렇게 의혹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데는 박 장관의 해명이 명쾌하지 못했던 점도 있지만 비밀외교가 주는 흥미에 계속정보를 어디선가 흘리고 증폭시키고 있는 탓도 크다.
○…방북설의 진원지로 가장 먼저 나돈 것은 이른바 여권 내 권력암투.
박 장관은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하고 김옥숙 여사의 인척이란 점등으로 노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으나 당돌함 등으로 인해 여권 내 불평과 견제·질시의 대상이 돼왔었기 때문.
특히 대권을 겨냥, 야심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여권 내에 많은 적을 만들어 왔다.
권력암투설의 하나로 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인 K씨가 진원지라는 설.
K씨가 신당을 만들기 위해 무소속의 박찬종의원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이번에도 영등포 을구 재선거와 관련지어 박씨를 견제하는데 이용했다는 설이다.
이와 함께 여권 내 L·K 및 또 다른 정부의 L씨 등에게도 의심의 눈길이 미치고 있는데 그만큼 박 장관의 여권 내 입지가 불안함을 반영.
5공 수구세력의 반격이라는 설도 있다.
5공 청산문제에 매듭을 짓지 못하고 시간만 끌고 있는 6공 정권에 불만을 품은 백담사 측이 반공무드를 틈타 경고성 충격을 던진 것이라는 추측.
○…그러나 정작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인사들은 오히려 박 장관의 자기과시 습성에 혐의를 두는 눈치.
청와대에서 내각으로 진출한 박 장관이 자신의 최대 성과인 북방정책문제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한 것 아니냐는 추측.
박 장관은 잇단 방북설을 해명하면서도 직접적 부인보다『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하지 않았느냐. 거기에 틀린 게 없다』는 식의 간접부인을 했고 거기에다 장황하게 남북 비밀접촉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붙여왔다.
더구나 헝가리와의 수교 때는 「비밀접촉」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공개한 적도 있고 비공식 모임에선 대북 접촉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 흘려온 것도 사실이다.
여권의 한 인사도 『비밀접촉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박 장관 진영의 몇 사람 아니냐』며『결국 국민들은 우리 외교가 박 장관의 손아귀에 있다는 착각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자가발전」 가능성을 의심.
○…권력암투와는 관계없으나 정부내의 불만세력이 흘렸을 가능성도 대두.
대북 정책은 통일원·외무부·안기부 등이 담당해 왔는데 밀사라는 이유로 박 장관이 이들을 배제, 독주해와 이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던 것.
따라서 박 장관이 정무장관으로 옮긴걸 계기로 자신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같은 설을 유포했을 것이란 추론.
○…또 다른 관점에서는 대북 접촉창구의 변화가능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즉 기존 접촉창구의 효력이 끝나 이를 폐기하고 새로운 대북 라인을 만들고 있다는 설이다.
이러한 시각은 최근 박 장관의 접촉 상대역이었던 허담이 북한 권력 내에서 서열이 밀려나면서 접촉창구를 바꿀 필요가 생겼다는 해석.
더구나 박 장관도 청와대를 떠났으므로 이 기회에 거의 쓸모 없어진 기존의 비밀접촉을 노출시켜 폐기해 버리자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
정부측이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도 이런 소문의 뒤에 북한이 있지 않느냐는 것 .
최근 국내에 주사파가 양산되고 잇단 재야인사의 입북으로 정부차원의 대화를 차단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즉 남쪽 내부에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해 제동이 걸리게 하고 비밀유지 약속위반을 이유로 당분간 대화통로를 차단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가정이다.
이 경우 임수경·문규현 입북사건들을 합리화하고 이른바 「민중루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방편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의혹은 미국 개입설. 그 동안 6공 정부의 급속한 북방 및 대북 정책의 진전이 미국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여권 내 강경 수구 세력의 제동이라는 소문들이 흘러나오면서 주목을 받고있는 쪽이 군 쪽이다.
이번 파문을 일으킨 박찬종의원의 『군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확인했다』는 발언에서처럼 주로 여권 내에서 나오는 설인데 군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아예 대꾸조차 않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여부를 떠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남북대화사무국과 함께 판문점·해외에서의 비밀접촉을 군사정전위 파견관·무관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데다 특히 북방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비쳐지고 있다.
특히 지난날 대북 정책추진에 있어 군은 철저히 배제됐던데 대해 깊은 분노와 의구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
정주영 현대회장의 방북사실도 뒤늦게 전해듣고 군 수뇌부들이 크게 분개, 일부에서는 이를 추진했던 박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 가에서 떠도는 설은 야당의 복잡한 사정만큼이나 다양하고 엉뚱하기 짝이 없다.
이중에서도 가장 끈질기게 유포되고 있는 것이 야권내부가 진원지라는 주장 및 급진 재야, 또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흘렸다는 풍설.
야권 내부 설의 하나는 평민당 쪽에서 국면전환을 꾀하기 위해만든 「작품」이라는 것인데 이 소문은 주로 민주·공화당 등 다른 야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 소문은 13대 선거에서 낙선하고 현재 체미 중인 야당정치인 K씨가 미국에서 들은 얘기를 모아 당에 보고를 했는데 이 정보가 재야·운동권·야당가에 흘러 다니다 박찬종·이철 의원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
박 의원은 영등포 을구 재선거를 앞두고 뭔가 자신들을 크게 부각시킬만한 호재를 찾고 있던 터에 이를 대정부 질문서로 공개적으로 문제삼음으로써 역시 일대 반격의 계기로 삼고자한 목과「셈속」이 맞아 떨어졌다는 그럴듯한 분석을 하고 있다.
평민당이 이 같은 정보를 홀린 이유로는 박 장관이 공안정국을 주도하고 평민당 의원 2∼3명 추가 입북설 등을 흘렸다고 보고 그에게 일격을 가하자는 의도라는 추측도 있다.
또 한가지 소문은 평민당이 진원지가 아니라 운동권을 포함한 재야가 진짜 출처라는 주장. 즉 최근의 공안기류로 인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재야가 서 의원·문 목사·임양 등의 입북을 박 장관의 방북과 동일시하게끔 유도함으로써 이들의 밀입북논리를 뒷받침해주고 비난여론을 희석시키고자 했다는 것.
그런 시각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흘렸다는 세도 있는데 그것은 박찬종의원과 사제단간의 긴밀한 유대관계 때문.
과거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음모를 꿰뚫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정보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제단은 이설을 친분이 깊은 박 의원을 통해 밝힘으로써 문규현 신부 입북으로 빚어진 수세국면을 반전시키려 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김용일·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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