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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우승 예정자의 낙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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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악기 연주자는 운동선수 비슷하다. 좋은 신체조건을 타고나 따라잡지 못할 만큼 높이 가는 사람이 있다. 2001년생인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브가 그렇다. 13세에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동영상을 보면 놀라운데 손가락을 비롯해 연주에 필요한 몸의 많은 부분이 말을 잘 듣는 피아니스트다. 원하는 속도와 힘으로 음악을 표현한다. 말 그대로 하고 싶은대로 한다.

만 17세인 말로페브의 공연 스케줄은 이미 스타급이다. 러시아의 음악 황제라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협연했다. 게르기예프는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16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의 총감독이다. 또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와 듀오 공연도 해봤다. 마추예프는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장이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그는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우승자로 몇 년 전부터 회자됐다.

말로페브는 21일(현지시간) 첫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온라인으로 콩쿠르를 지켜보던 이들이 토론을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에서 시작해 “바흐·베토벤 같은 독일 음악 해석이 최악이었다”라든지 “테크닉만 완벽했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첫 라운드에서 연주한 바흐와 베토벤은 확실히 독특했다. 바흐는 재즈 편곡인가 싶을 정도로 속도가 일정치 않고, 베토벤은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일부러 듣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자의적이었다. 게으른 추론을 하면 적은 나이를 이유로 들게 된다. 또는 타고난 성품이 러시아 이외의 음악을 낯설어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다. 손꼽히는 매니지먼트 오푸스3는 말로페브를 이미 영입했다. 올 하반기에 일본·중국·싱가포르까지 진출해 공연한다.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27일 수상자를 발표한다. 피아노 부문에서 누가 수상하더라도 말로페브만큼 이야깃거리를 만들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다양한 종류의 스타일을 이미 보여준 지금, 이제 사람들은 어떤 연주자를 재미있어할까. 이 물음에 답을 할 피아니스트가 한 명 늘었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