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앞에서 꼬집고 등짝 때리고···간호사 '태움 갑질'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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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제작해 간호사들에게 배포한 태움방지 배지. [중앙포토]

신촌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제작해 간호사들에게 배포한 태움방지 배지. [중앙포토]

2017년 12월 고용노동부는 이듬해 3월까지 전국의 종합병원 43개소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병원 내에 만연한 갑질과 임금 체불 등이 사회문제로 비화할 때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괴롭혀 태운다는 의미의 '태움'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일반에 알려졌다. 근로감독 결과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고용부, 11곳 대상 근로감독 재실시

고용부는 떼먹은 임금을 지급토록 하고, 태움 등의 근절을 위한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고용부 감독하에 개선작업이 진행됐다.

근로감독에 적발된 뒤에도 꿋꿋하게 갑질, 임금 떼먹기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고용부가 이달 14일까지 재차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지난번 근로감독에서 적발되고도 근로 부조리를 개선하지 않는 것으로 의심되는 11개 병원을 대상으로 했다. 결과는 지난해와 다를 바 없었다. 선배 간호사는 꿋꿋하게 후배 간호사의 영혼을 태우고, 병원은 임금을 떼먹고 있었다.

고용부는 이런 내용의 11개 종합병원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이들 병원에서 총 37건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을 확인했다. 정상적으로 법을 지킨 병원은 한 곳도 없었다. 서울지역 4개, 인천과 경기 각 2개, 광주·대전·강원 각 1개 병원이다.

법적 근거 없어 명단 공개는 못 해…시정하지 않으면 사법처리

편도인 근로감독기획과장은 "위반한 병원에 대한 명단 공개는 법적 근거가 없어 공표하지 못했다"며 "대신 적발된 사안에 대해 2주가량의 시정조치 시간을 주고, 그래도 개선하지 않으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해 사법처리하는 등 강력하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11개 전 병원이 '공짜 노동'을 시키고 있었다. 간호사의 경우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인수·인계가 필수다. 그래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모든 병원이 출퇴근 시간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고용부는 병원의 전산시스템을 뒤져 디지털 증거분석을 거쳐 임금을 떼먹은 증거를 확보했다. 월급을 줄 때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등을 누락했다. 퇴직금을 안 주기도 했다.

비정규직엔 수당을 아예 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영혼을 태우는 간호사 내부 갑질 방치

태움 관행도 여전했다. 환자 앞에서 선배가 인격 모독성 발언을 하는가 하면, 수습기간에 업무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꼬집고 등짝을 내리쳤다. 일을 못 한다고 한 번 찍히면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다.

권기섭 근로감독정책단장은 "노동 환경이 열악한 업종의 개선과 인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적발된 병원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방침"이라며 "다른 취약 업종에 대해서도 기획근로감독을 통해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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