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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중한 마르크스 종교 전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들의 문규현 신부님께서 판문점이나 평양에서 그의 어린양과 함께 또 어떤 깜짝쇼를 가지고 김일성 부자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는지 예측을 못하겠다. 그러나 아마도-그리고 간절히 원컨대- 지난 1일 저녁뉴스시간에 텔레비전으로 소개된 판문점의 절규가 그의 방북행각의 클라이맥스가 아닌가 싶다.
미국의 영주권을 갖고 있다는 그는 온 몸으로 미 제국주의를 성토하고, 통일의 걸림돌인 미군의 철수를 외쳐댔다. 그가 「미국의 하수인」이라고 부른 노 정권의 반통일, 반민족적인 자세를 고발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를 대신해 짊어진 십자가는 그에게는 너무 무거워 보였고, 미국만이 한반도분단의 원흉이라는 그의 수정주의사관은 한국현대사에 대해 짧은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 미군이 물러가기만 하면 통일이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미군철수가 통일의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걸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북한사회가 소련이나 동구 변화의 반의반만 수용해도 통일의 전망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판문점에 오기 전에 평양의 장춘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고 밝혔다. 문 신부는 지구상에서 가장 교조주의적인 공산국가인 북한의 수도에 있는 그 성당의 존재이유를 몰랐을까. 일찍이 마르크스는 어떻게 하면 종교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고 지혜를 짜내는 일에 많이 골몰했다.
그의 결론은 그리스정교·가톨릭·개신교 같은 종교세력과 정면으로 싸우기보다는 그런 종교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레닌과 스탈린은 종교를 우군으로 포용하는 체하는 종교전략의 일환으로 명목상 교회의 존재를 인정해 오고 있는 것이다. 문 신부의 감격은 바로 마르크스·레닌·스탈린, 그리고 김일성의 종교전략의 성공을 증언하는 것이다.
판문점연설에 나타난 그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불타는 증오는 해방신학(한국서는 민중신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으로 설명된다. 1960년대와 70년대 중남미의 게릴라전이라는 정치투쟁에서 탄생된 해방신학은 사회적·정치적인 억압, 경제적인 빈곤은 그 원인이 선진자본주의국가, 특히 미국의 착취와 제국주의적 지배에 있다고 전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최저생활과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긍정하고 혁명을 정당화한다.
해방신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제3세계의 소외된 사람들은 선의 입장에 서고, 소외의 원인을 만들어내는 미국·서구 같은 나라들은 악의 입장에 서기 때문에 혁명으로 타도해야 한다.
미국·서구의 정신적인 지주인 교회도 혁명의 대상이다.
해방신학 창시자의 한사람인 구티 에레스는 신앙행위는 사회적 대결과 민중의 해방투쟁 속에서 가난한자, 억압당하는 자들과 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문 신부의 방북은 참으로 잘 내린 결정이다. 김일성의 장기 독재하에서 숨막히도록 꼭 닫힌 북한사회에서 그의 구제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남한의 억압받고 굶주린 동포들은 미국영주권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민중신학의 성직자들이 구제하면 될 터이다. 교회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방신학자 뤼터는 말하지 않았던가. 다만 성난 문 신부는 등을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더욱 가혹한 억압자, 수용소군도의 관리자들, 인간까지도 국유화한 사람들은 그의 등뒤에 있었다.
문 신부의 발언 중 어디까지가 자신의 목소리며 그를 보낸 사제들의 견해를 얼마나 반영한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문 신부의 방북을 추인한 사제단 측은 문 신부의 발언이 거두절미되고 문맥을 떠나 편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만 논평했다. 사제단의 반응이 문 신부발언의 무조건지지가 아닌 것은 다행한 일이다.
문 신부의 격앙된 절규가 그를 흥분시킨 특수상황의 산물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각본의 필자는 뻔하다. 적(공산주의자) 과 흑(성직자)의 광소극에서 누가 연출자이고 누가 배우인지는 처음부터 분명한 것이다. 어린양을 보호하러 「죽음을 무릅쓰고」입북했다는 성직자가 복음의 적의 정치선전수단이 되고 있는걸 보는 우리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본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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