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자유한국당 의원)은 ‘친박’의 굴레를 벗을 수 있을까. 그는 한때 친박(친박근혜)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었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는 소문(2013년), 20대 총선 직전 "김무성 죽여버리게. 이 XX 다 죽여"라고 한 전화 녹취록 파문(2016년)은 지금도 가끔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이런 일화들 때문에 일부에선 그를 ‘문제적 정치인’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최근엔 윤 위원장의 주변에선 그가 그런 과거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9일 오전 7시 30분 윤 위원장은 지역구(인천 미추홀구을)인 인천 남구 용현동의 한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의정 보고서를 돌리고 있었다. 밀착마크에 나선 기자는 현장에서 "친박 이미지를 벗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는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심플했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윤 위원장은 지역 민심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저장된 전화번호만 3만개가 넘는다. 지역구 관리는 철저히 한다”고 했다. 접전이 잦은 수도권을 지역구로 두고 있어서일까. 윤 위원장은 의정 보고서를 나눠주는 틈틈이 “중도 표심 잡기와 외연 확장이 중요하다”고 되뇌었다. 그는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과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홍문종 의원의 탈당 등 친박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다.
- "김무성 죽여버려" 파문은 어떻게 마무리됐나.
- 요즘은 김무성 전 대표와 자주 만나고 통화한다. 몇 년 전 만나서 ‘형님, 제가 '박근혜 대통령 성공이 대한민국 성공이다' 하나만 생각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억울한 표정으로) 누나 발언은 그렇게 부른 적이 없는데 아직도 그런 말이 돈다.
- 홍문종 의원 탈당 전 연락을 주고받았나.
-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우파가 통합할 때지 분열할 때가 아니다. 탈당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
- 공천에 떨어져도 친박신당을 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 신당은 가지 않는다. 공천 못 받아도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거기(친박 신당)가 뭐 하는 곳인지도 알 수 없고….
자연스레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홍 의원 등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지 메시지를 받아 신당 창당에 나섰다는 소문 때문이다. 윤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분열의 메시지가 아니라 통합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했다.
- 박 전 대통령이 보수통합의 메시지를 낼 가능성은.
- 별로 없다고 본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 분열의) 메시지를 내면 영남의 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보수를 분열시키는) 메시지를 내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 여러 번 면회를 신청했지만 못 만났다.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서만 얘기하더라.
- 연말 박 전 대통령 사면설이 돈다.
- 정부에서 보수 분열을 노리고 형 집행정지를 할 거로 본다.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이 더 어려워질 거다.
-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되지 않길 바라나.
- (잠시 생각)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의리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의견이야 안 물어봐도 아는 것 아니냐.
- 사면을 바라지만 보수 분열이 걱정된다는 뜻인가.
- 그렇다.
의정 보고서를 돌리던 중 자신을 항운노조 조합원이라고 소개한 한 지지자가 “한국당이 빨리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당에서 쓴소리하라”고 했다. 윤 위원장 역시 “국회로 돌아갈 때”라고 했다. 그는 “강성투쟁으로 갈 때가 아니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도 필수”라고 말했다.
- 국회에 조건 없이 등원해야 하나.
- 학생이 학교 가는 데 명분이 필요한가. 그거랑 똑같다. 우리가 국회 가는 데 명분이 왜 필요한가. 지역주민 말 들었지 않나. 결국 밖에서 떠도니 서훈 국정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만난 의혹을 추궁도 못 했다. 결국 밝혀낸 게 없다.
-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조건 없이 통합해야 한다.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 가치, 근간을 지켜내는 거다. 통합하지 못하면 수도권에서 지고 내년 총선도 패배한다. 수도권이 전체 지역구의 절반이다. 당 대 당 통합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다.
오전 9시 20분 윤 위원장과 인근 빵집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이후 목욕탕에서 샤워한 뒤 10시쯤 인천 미추홀 구청을 찾았다. 위생 교육을 받기 위해 구청을 찾은 자영업자에게 그는 ‘얼굴도장’을 찍었다. 윤 위원장은 이동하는 차에서 틈틈이 자료를 읽었다. 좌석 옆에는 서류뭉치와 신문이 쌓여있었다. 읽는 양이 많다 보니 차량 뒷좌석을 개조해 LED등을 따로 달았다.
LED 등을 단 건 운전을 맡은 이신훈 수행단장이다. 윤 위원장보다 나이가 많은 이 단장은 “이동이 너무 많고 스케줄도 빡빡하다 보니 사람을 못 구해 내가 운전을 한다”고 했다. 윤 위원장이 그를 “형”이라 불렀다. 이 단장은 “윤 위원장이 귀족 이미지가 있지만, 누구보다 소탈하다”고 했다.
윤 위원장의 ‘귀족 이미지’는 대통령 가족 및 재벌가와 혼인을 한 개인사도 영향을 미쳤다. 윤 의원은 서울대를 졸업하던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녀 효선 씨와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했다. 곧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2005년 이혼했고, 2010년에는 롯데가 3세 신경아씨와 재혼했다.
- 이혼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 난 이혼이라는 걸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이라는 게 있더라. 옛 장인어른(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면서 '너를 위해서라도 이걸(이혼) 하는 게 좋겠다'고 먼저 제안을 했다.
- 재혼은 어떻게 했나
- 재혼할 때도 옛 장인(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배필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워낙 억측이 많아서 개인사와 관련해 책을 쓸까 생각 중이다.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는 국회에서 전직 미 연방 하원의원 6명과 오찬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10시 40분쯤 국회에 도착한 윤 위원장은 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외통위원장실을 찾아 현안보고를 받았고, 이어 국회 귀빈식당에 갔다. 오후 1시쯤 간담회를 마치면서 윤 위원장은 “한미 관계와 비핵화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는 ‘미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3만개 연락처 가운데 수천 개는 외국인 연락처”라고 했다.
- 한미 동맹이 최악이라는 당 주장에 동의하나.
- 그렇다.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됐을 때 문 대통령이 30분 전까지 선언문 발표 장면을 보겠다고 기다렸다. 일본은 전날 통보받았다. 한미 관계는 내부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 화웨이 장비사용 논란까지 겹쳤다.
- 미국 측에서 ‘화웨이 장비 쓸 경우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는 표현을 썼다. '꺼리다(reluctant)'는 건 외교적 수사로 안 하겠다는 얘기다.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게다가 이 정부가 임기 초부터 친중(親中)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이 중국몽과 일대일로에 동참하겠다며 중국을 산봉우리에 비유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 북한의 비핵화 전망은.
- 완전한 비핵화는 완전한 사기극이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4·27 판문점 선언 때 1년 내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한 거로 안다. 그래서 6월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도 거꾸로 가고 있다. 연말을 전후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없애는 선에서 합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