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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농수산물 유통 혁신과 ‘시장도매인제’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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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눈이 핑핑 돌아간다!”

친분이 두터운 유통업계 지인이 최근 유통업계의 흐름을 두고 한 말이다. 유통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형할인점으로 농산물 소매시장을 석권하던 대기업들은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라는 형태로 동네 상권을 잠식했다. 이제는 편의점, 온라인 배송 등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들어섰다. 4차산업 기술을 통해서 사람 대신 드론이 택배를 배송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소비자는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가는 대신 밤늦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내일 아침에 먹을 농산물을 고른다. 모두가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유통 전반에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 도매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도매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유통되는 농산물이 늘어가면서 도매시장이 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 가락시장을 포함한 수도권 도매시장들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20곳이 넘는 지방 공영도매시장들은 존립 자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도매시장 경매가격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지 오래.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 가져가는 수수료와 마진이 산지와 소비자 간의 가격 격차를 더 벌리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도 꾸준하다. 현재 도매시장은 여전히 성수기에는 하루 이상 경매 순번을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 변화의 필요성은 곳곳에서 제기되는데, 도매시장 거래제도는 ‘빙하기의 공룡’처럼 꿈쩍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있다. 15년 전 강서시장에 도입된 ‘시장도매인제’다. 쉽게 말해 시장도매인이 생산자와 직거래하는 방식이다. 애초 우려와 달리 농산물 도매유통의 한 몫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도입 초기 3000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거래실적이 현재는 7000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경매제보다 가격의 불안정성을 줄였고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의 기능을 시장도매인이 모두 담당해 유통 효율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정산조합을 설립해 농가에 지급하는 출하대금의 안정성을 높이는 등 문제점을 꾸준히 개선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완한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에 경매제도와 병행하여 운영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자를 마주하게 되는 도매법인의 반발이 상당한 게 여전히 걸림돌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이 있다. 시장도매인제의 가락시장 도입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이 핑핑 돌아가는’ 유통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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