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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일관계, ‘체제의 위기’ 상황, G20에서 양국 정상 만나야”

중앙일보

입력

“50년 간의 한·일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체제의 위기’ 상황이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

“양국 관계의 ‘협력-갈등’ 사이클이 사라지고 ‘갈등의 상시화’ 시대가 됐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책임교수)

지난 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를 전문가들은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東京) 게이오(慶應)대에서 열린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일미래포럼, 게이오대 현대한국연구센터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한국과 일본의 학자, 언론인들이 모여 한·일 관계의 미래 비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일본 게이오대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강제징용 판결 "쉽게 해결책 찾을 수 없는 문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해야

지난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사진 한국언론진흥재단]

지난 7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사진 한국언론진흥재단]

참석자들은 현재의 한·일 관계가 탈냉전 이후 양국이 처한 위협 인식의 괴리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조양원 교수는 “중국과 북한,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가 바탕이 된 가운데 국내 정치 상황, 정치 지도자의 인식 등이 지금과 같은 갈등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오쿠노조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도 “냉전 종식 이후 양국 사이에 과거사라는 원심력이 커지고, 안보나 경제 같은 구심력이 되었던 공통 분모가 사라졌다”면서 “일본이 절대적으로 한국에 필요한 존재였던 시대가 지나갔는데, 일본은 이런 구조적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제징용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위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그동안 한·일 관계에는 여러가지 위기가 있었지만, 일 년 정도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착이 되고 회복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적절한 방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종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덮어두고 있던 문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양국 관계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조양현 교수는 “한·일 관계가 이완되었다고는 하지만, 양국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쌍방이 손해를 보는 관계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면서 “안정적인 지역질서의 구축이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양국관계를 바라보며 장기적으로 시민사회 차원의 인적·문화적 교류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쿠노조 교수도 “지역 내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 국제질서라는 큰 틀에서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치권의 긴밀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일본측 참가자들에게선 “한국 정부가 좀 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은 “6월에 열릴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때 한국이 오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가 일본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실망스러웠다”며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전 주영 대사)도 “G20에서 한·일 양자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일본 측 경고는 외교에 종사했던 사람의 상식으로 믿기 어렵다”면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대응을 요청했다.

도쿄=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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