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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 집중」우려 1년간 ″방황″|적자연속…「국민경제 효율」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공룡같은 덩치를 이끌고 갈 길을 못 찾던 한국중공업이 결국 민영화의 길을 걷기로 방향을 잡았다.
따지고 보면 그간 한중이 4천억원이 넘는 누적결손을 볼만큼 깊은 부실의 수렁 속에 빠져든 것이나, 그 치유방안 마련이 시급함을 알면서도 정부부처끼리 민영화냐 아니냐를 놓고 티격태격하느라 거의 1년간을 허비해 온것도 다 그 큰 덩치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기계 공장이니, 세계 최대의 1만t급 프레스니 하는 큰 덩치를 일감과 경영능력 부족으로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채 적자에 빠뜨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덩치를 어떻게 해보자니 총 자산이 무려 7천억원에 이르는지라 쉽게 어디다 의탁할 형편도 못되었던 것이다.
다시말해 장부상의 총 자산에서 빚 나부랭이를 빼고 여기다 자산재평가 차익을 더한 한중의 진짜 알맹이인 이른바 순자산은 88년말 현재 약1천7백억 원인데 이 정도라면 7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삼양사 그룹전체의 순자산과 맞먹고 현대그룹 전체의 약10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라 구멍가게 주인 바꾸듯 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한국경제의 상황논리상 사사건건 거의 지상의 정책목표로 앞세워지고 있는「대기업 경제력 집중억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중의 민영화는, 이를테면 현대그룹이 삼양사 그룹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의 일반논리에서 본다면, 미국에서는 기업의 인수·합병이 새로운 금융영역으로까지 등장하고 많은 선진국에서 철도·철강 등 거대한 공기업을 과감히 민영화시켜 「경제효율」을 찾는 마당에 국민경제전체에 누를 끼치는 한중의 비효율을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듯 지난 1년간을 표류해온 한중 문제의 본질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국민경제의 효율 향상」이라는 두개의 정책목표가 서로 맞부닥칠 수밖에 없었던데 있다.
이번에 결국 정부가 찾아낸 해답이란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이정도의 해답을 구하는데 과연 1년씩이나 세월을 보내야 했는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쉽게 말해 한중은 민영화를 시켜 「효율」을 찾되, 「경제력 집중 억제」는 기존 공정거래법상의 총액출자제한이라는 장치를 엄격히 작동시켜 정책목표를 달성시키겠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중에 뜻이있는 대기업 그룹이 있다면 다른 계열기업을 팔아치우거나 해서 실력을 갖춘뒤 가져가라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원칙이 정해졌다 해서 한중과 같은 큰 덩치가 고물 팔려나가듯 일사천리로 쉽게 새 주인을 찾기는 힘들다.
내정가격을 얼마로 하느냐, 인수대금 납입방법을 어떻게 하느냐등 한중의 원매자 물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건들이 아직 다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와 「경제효율의 향상」이라는 상충되는 정책목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커다란 과제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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