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은행 ‘일자리 점수’ 매기는 금융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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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애란 금융팀 기자

한애란 금융팀 기자

정부가 민간 은행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하겠다고 나섰다. 6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이 직접, 간접적으로 고용을 얼마나 창출했는지 계량적으로 평가해 우수사례를 8월 중 공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중은행 8곳과 지방은행 6곳이 측정대상이다.

금융위, 은행 14곳 기여도 8월 공개 #반도체보다 식당 대출 높은 평가 #“자영업 대출 죄더니” 은행들 혼선

은행이 몇 명을 고용했는지는 따로 측정할 필요가 없는 수치다. 매 분기 공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14개 은행의 임직원 수는 10만161명으로, 1년 전보다 6975명 늘었다. 은행권 임직원 수는 4년(2014~2017년) 연속 감소하다가 지난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각 은행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적극적으로 발맞춘 결과였다.

그런데도 굳이 금융당국은 이를 평가하겠다고 나섰다. 단순한 고용인원만이 아닌 다른 부분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금융위는 은행이 각 산업에 지원한 자금 규모와 고용유발계수를 활용해 ‘간접적 일자리 창출 기여도’까지 측정할 계획이다.

평가엔 목적이 있는 법이다. 금융위가 은행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용을 계속 늘리라는 것, 그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에 대출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과연 한국 금융이 추구할 방향이냐는 점이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2015년)에 따르면 고용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산업은 인력소개소·여행사·콜센터 같은 ‘사업지원서비스’다. 고용유발계수 17.4로, 10억원 생산으로 창출하는 고용자 수가 17.4명이다. 음식·숙박업(11.5)과 도소매·상품중개서비스(11.4)도 고용유발계수가 높다. 반면 1차 금속(4.1), 컴퓨터·전자·광학기기(3.8) 등 대부분 제조업은 고용유발계수가 크게 떨어진다. 반도체 제조업체보다 음식점에 대출하는 것이 일자리 평가에선 더 나은 셈이다. 정부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라며 지난해부터 은행권에 동산담보대출을 독려해왔다. 동시에 음식·숙박업 같은 자영업자 대출에 대해서는 부실화가 우려된다며 대출 규제를 강화해왔다. 그런데 이런 흐름과는 어긋나는 일자리 창출이란 새 기준이 갑자기 등장했다. 은행으로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이를 모르진 않는다. 익명을 원한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이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출하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생산성에선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다만 일자리가 중요한 만큼 이번엔 고용창출 측면에서 한번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은 혼선만 초래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은 민간 은행에 일일이 ‘콩 놔라 팥 놔라’ 할 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그려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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