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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게 이런거 왜 해” 간부급 공무원들 성평등교육 분탕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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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29일 충남 아산의 경찰대에서 있었던 치안정책과정 성평등 교육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날 강의실에는 총경 승진 예정자 57명과 부처 공무원과 공공기관 간부 14명 등 총 71명이 모였다.

경찰대 강의 총경급 등 71명 참석 #“피곤한데 빨리 끝내라” 곳곳 불평 #강사 “이런 사람들이 기관장이니…” #교육생 “강압적 강의 수용 못해”

강의를 담당한 여성학 연구자 권수현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날 교육생들의 태도를 ‘분탕질’이라고 표현하며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성평등이라는 주제 자체를 조롱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성 평등의 가치, 공직 사회의 기강 등을 무너뜨린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 박사의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그는 강의 초반 관리자로서 성평등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진 고민이 무엇인지 조별로 공유하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이때 누군가 강의실 뒤쪽에서 큰소리로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박사는 이 교육생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 승진 예정자로 적었다.

그를 무시하고 조별 토론을 진행하자마자 순간 15명 이상이 자리를 비웠다.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 “졸리다”는 불평이 곳곳에서 나왔다. “커피를 마시겠다”며 자리를 비운 간부도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여경 인사’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져 권 박사는 경찰채용 기준, 직무배치, 평가의 공정성 부문을 다루기 시작했다. ‘2017년 현재 경찰 조직 내 여성 비율이 11.1%’라는 자료 화면을 띄우자 “여자가 일을 잘하면 구태여 남녀 가려서 뽑을 일이 있겠냐” “여경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는데 왜 관련 통계는 제시하지 않냐” 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진행한 교육내용 중 증가하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도 ‘통계 출처를 대라’는 이의가 제기됐다. 결국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예정된 이날 교육은 오후 4시를 조금 넘어 중단됐다고 한다. 그는 “이런 태도는 대학 1학년에게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기관장이나 경찰서장으로 앉아있는 조직에서 성 평등 행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박사는 “먼 길 달려온 외부 전문가에게 노골적으로 밑바닥을 드러냈다”며 “(교육생들은) 모두 시종일관 ‘성 평등한 조직 만들기’라는 관리자에게 주어진 과업을 부정했다”고 주장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3일 출입기자 정례간담회에서 권 박사의 주장에 대해 “강연한 분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한 수강자들의 행동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안을 확인한 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권 박사가 지목한 교육생인 건보공단 간부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교수님의 감정적 편견과 강압적인 강의 내용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A씨는 “(권 박사가) 여성 경찰 관리자 비율을 절반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강요했다”며 “조직 특수성과 문화는 상관없이 무조건 남녀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 관리자는 성희롱이나 하면서 아무 이유없이 양성 평등에 역행하는 그런 조직인 것처럼 비하했다”고 밝혔다. 그는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교수님이 진행하는 대로 아무 소리 말고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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