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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 있다”…퀴어문화축제, 20살이 되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1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도심을 한바퀴 도는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스1]

1일 오후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광장을 출발해 도심을 한바퀴 도는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스1]

‘성소수자들의 대명절’로 불리는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는 시간 동안, 퀴어축제는 끊임없이 외연을 넓혀갔다. 2000년 50명이 모여 시작한 행사가 2019년에는 퀴어가 아닌 사람들까지 수만명이 참여하는 축제로 성장했다.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20년 동안의 퀴어축제는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과정이었다”고 정의했다.

‘그들만의 행사’에서 서울광장 행사까지

2000년 8월 대학로에서 한국 최초의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50여명이 트럭 하나로 퍼레이드를 진행한 조촐한 행사였다. 이후 이태원, 종로 등에서 행사를 진행했고 참가자는 점점 늘었다. 하지만 이 때만해도 주로 성소수자들만 참가하는 행사에 불과했다.

변곡점을 맞은 건 2007년이다. 이때 법무부가 성적 지향ㆍ학력ㆍ병력 등 차별 사유 7개를 삭제한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하면서 성소수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소수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애인ㆍ노동자 등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퀴어 축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시민들의 인식도 점점 변해갔다. 퀴어 축제는 홍대ㆍ신촌 근처로 근거지를 옮겼다. 2013년 홍대에서 열린 14회 퀴어 축제에는 참가자가 늘었을 뿐 아니라 홍대 상인들이 축제 후원을 하고 상가 곳곳에 무지개 깃발을 꽂으며 호응하기도 했다. 기독교ㆍ보수 단체를 중심으로 퀴어 축제 반대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외치며 관할 지자체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신촌에서 열린 15회 축제 때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었다.

2015년 6월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퀴어문화축제의 장소로 허락하면서 퀴어축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퀴어축제의 서울광장 진입은 축제 조직위원회측의 염원이었다. 서울 도심의 상징적 공간인 서울광장 집회 신고서를 수차례 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다 서울광장 사용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며 광장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후 매년 서울광장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 하이라이트격인 퍼레이드 행렬이 광화문 광장 인근을 지나며 '혐오가고 평등오라'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 하이라이트격인 퍼레이드 행렬이 광화문 광장 인근을 지나며 '혐오가고 평등오라'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퀴어 축제가 가져온 변화

20회를 맞은 지난 1일은 퀴어축제에 의미 있는 날이었다. 트럭에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고 참가자들이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하는 ‘퀴어 퍼레이드’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데, 20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까지 행진한 것이다. 7년째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걸었던 때도 있었는데, 광화문ㆍ명동을 걷는데 시민들이 반겨주기까지 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며 “내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권유진 기자

1일 오후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 권유진 기자

행사장에는 ‘성중립 화장실’도 설치됐다. 성중립 화장실이란 성별이나 장애 유무의 구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1인용 화장실을 말한다. 성중립 화장실은 남자용 소변기를 따로 설치하지 않고 양변기와 세면대만 설치해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미국에서 처음 설치됐다. 이후 스웨덴ㆍ캐나다 등에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늘리고 있다. 국내 몇몇 인권단체 사무실에도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있다.

한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를 데려온 가족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6살짜리 딸을 데려온 윤모(39)씨는 “인권 감수성이나 열린 사고는 어릴 때 형성되기 때문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 왔다”고 밝혔다. 독일인 오웬 뮐러(41)씨 역시 “내 아이가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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