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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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일 오후2시10분쯤 한양대학생회관내 전대협사무실.
지난달 30일 전대협의 평양축전참가를 위한 출정식 집회가 경찰의 강제해산으로 무산된 이후 인적이 끊긴 사무실 책상 위에 「보도자료재중」이라고 쓰인 노란색의 대형서류 봉투가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이 봉투는 이날 오전 전대협이 한양대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라는 정보에 접한 기자의 눈에 곧 띄었다.
봉투 속에는 전대협의장 임종석 군의 서명이 부기된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대협대표 임수경 양 사법처리 반대 및 환영준비위원장 전문환 군 명의의「평민·민주 양당 총재님께 드리는 글」, 한미연합사령관 앞으로 보내는 임양의 판문점통과 허용을 요청하는 서한, 「임 대표 판문점통과 및 현 시국에 대한 전대협의 입장」등 유인물4종이 들어있었다.
이어 30분쯤 뒤 전대협 선전국장 조광선 군(23)이 서울중부경찰서 기자실로 전화를 걸어 유인물에 대한 보충질문을 받겠다고 통보했다.
오후3시55분쯤 기자들이 대기중인 한양대홍보실로 조군이 전화를 걸어와 얼굴 없는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전대협의장 임군 등은 조군을 통해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은신해 있겠다』며 『임양 귀환예정일인 27일 전대협의 각 지구 대표 20∼40명을 판문점으로 보내는 한편 전국 대학에서 동시에 환영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얼굴 없는 기자회견은 임군 등이 지난5일 외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행방을 감춘 뒤 20일만에 열린 것이다.
이에 앞서 오전9시25분 서울동대문경찰서 기자실에도 전대협이 성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곧장 성대로 달려간 기자들은 총학생회사무실에서 전대협·전국청년운동단체협의회·전국민주통일불교운동연합 등 3개 단체 명의의 정부측에 임양의 안전 귀국보장을 요청하는 유인물만 발견했다.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임군 등 전대협간부들의 잠행활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굼증만 더해준 하루였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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