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돼지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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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이권을 주고받은 흔적은 미로처럼 뒤얽혀 있고, 각종 게이트들은 음해와 희생의 이미지 속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진실은 없고 소문만 무성한 이 어처구니 없는 세계는 웃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차마 바라보기 어려울 터. 연극 '돼지사냥'(이상우 작.민복기 연출, 26일까지.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이 희극적 외양을 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반복과 그 반복에 엉겨붙은 인간의 욕망을 먹고 크는 히드라다. "~카더라"라는 종결어미를 달고 흐느적거리는 소문의 혀들은 날렵하게 인간을 옥죄고 기만하다 내동댕이친다.

소문의 벽에 갇힌 채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며 탐욕의 돼지가 되어 간다. 사라진 씨돼지와 1백억원의 행방이 얽히고, 본조와 원조 사이의 헐뜯기가 군의원 불법선거로 이어지면서 난장판이 된 저 경상도의 오지마을 서부리. 야밤에 공비처럼 등장한 수사관은 오히려 의심과 불안을 키우고 점점 수사 대상은 모호해진다.

너저분한 현실의 이면을 희극적 상황으로 산뜻하게 마름질하기를 즐기는 이상우의 작품답게 연극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단순화와 과장이 뒤섞이고, 섹스와 관련된 은밀한 농담이 유쾌하게 오고 가며, 영화와 광고를 패러디한 장면들이 슬쩍슬쩍 튀어나온다. 관객들은 두 배역을 소화해내는 다섯 배우들의 순발력과 능청스러움에 길든 부싯돌처럼 재빨리 점화된다. 대구 연인무대에서 활동하는 두 배우의 협연으로 경상도 사투리는 바야흐로 원조를 자랑한다.

3년 전 초연을 할 때는 총 맞아 죽은 티켓다방 종업원 가락이를 통해 의외의 반전과 엉뚱한 희생을 강조했다. 반면 이번 공연은 돈과 사랑을 동시에 잃은 지서장의 비애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에 대한 비극적 해석이 희극적 상황 설정과 엇물려 있는 형국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트로트처럼 읊조리는 지서장의 흐느낌과 강렬한 록 음악의 대비가 징검다리처럼 놓여 극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적당히 부도덕하면서 터무니없이 순진한 지서장의 좌절을 보자니 입가의 웃음은 지워지고 씁쓸한 여운만이 길다. 이 결말의 정서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웃음을 자극하는 상황에 민감한 관객이라면 이 마지막 장면에 당황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백현미(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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