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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연예인·상인이 주인 된 대학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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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남윤서 교육팀 기자

남윤서 교육팀 기자

5월 축제 기간을 앞두고 각 대학 학과 홈페이지에 교육부의 공문이 올라왔다. 축제 기간에 허가 없이 주류를 판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위반 시 9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도 있었다.

이번 주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와 한성대 등을 마지막으로 대학 봄 축제가 마무리된다. 교육부의 ‘경고’에 따라 대학 축제 주점에서 술을 파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점은 음식만 팔았고 술은 개인이 지참해야 했다. 인근 편의점과 마트는 특수를 누렸다. “학교 안에서 술 안 팔아요”라는 현수막을 내건 편의점은 술을 사 가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세종대 인근의 한 마트 주인은 “축제 기간에 평소 주류 매출의 20배를 팔았다”고 말했다.

술 판매가 금지되면서 ‘대학 축제의 꽃’이라 불리는 주점은 위축된 분위기다. 예전처럼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학내 주점 수가 줄었다. 이런 축제 기간 주류 판매 금지 조치는 지난해 국세청 요청에 따라 교육부가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현행 주세법상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주류 판매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도 불법이었지만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축제 기간 주류 판매가 왜 인제 와서 금지됐을까.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주변 상인들의 민원이 많았다. 축제라 사람은 많이 모이는데 학교 내 주점에 손님을 빼앗긴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도 공문 발송 이유에 대해 “정상적으로 판매 허가를 가진 분들이 제보하면서 문제가 됐다. 원칙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칙대로라면 대학 주점은 주류 판매뿐 아니라 음식 조리·판매도 할 수 없다. 음식 영업을 하려면 식품위생법상 적법한 기준을 갖추고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정부 차원에서 음식 판매도 금지한다는 공문은 내려오지 않았지만 일부 대학은 주점을 열지 않고 음식도 푸드트럭 등의 외부 업체를 활용하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괜한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 음식 조리도 못 하게 했다. 앞으로 점점 많은 대학이 외부 업체를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축제가 상업화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연예인 기획사에는 대학 축제 기간이 대목이다. S급 가수는 출연료로 3000만원 이상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연예인 공연에 관객이 몰리면서 기업들은 대학 축제에 참여해 제품 홍보 이벤트에 열을 올린다. 이제는 학과나 동아리의 특색을 살린 재기 넘치는 주점 문화마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어느 대학이나 비슷한 출연진으로 꾸려진 공연 무대, 외부 업체로 대체된 주점이다. 학생은 축제를 만드는 주인공보다는 구경꾼이나 손님일 뿐이다.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대학 축제 문화를 살려낼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학 축제를 지역 축제화하는 방법이다. 지역 축제는 지자체 조례를 통해 별도 기준을 적용해 운영할 수 있다. 지자체가 대학과 협력해 규제도 풀고, 지역 주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학생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업 자본에 밀려 대학만의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축제만이라도 최후의 보루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남윤서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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