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중 플레이에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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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右)이 7일 베이징에서 회담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힐은 북한 미사일 발사 사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이날 이른 아침 중국에 도착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포함한 7기의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틀 전인 3일 군사 실무접촉을 하자고 우리 군에 제의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차석대표인 문성묵(대령) 국방부 북한정책팀장은 7일 "북측이 3일 김영철 단장 명의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장성급 군사회담 연락장교(중령급) 접촉을 하자"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문 팀장은 "현 시점이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 6일 오후 4시 전화 통지문으로 연기를 통보했다"며 "(북한이)우리 군에 접촉을 제의해 놓은 뒤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을 통지문에 담았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보내온 전화 통지문에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관련 토의…'라고만 밝혀 장성급 회담 개최와 관련한 얘기인지, 다른 어떤 문제를 얘기하려는지는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군사 실무접촉을 제의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중 플레이란 해석도 있다.

◆ 북한의 이중 플레이=북한은 치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군사접촉을 제의한 3일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발사 징후를 포착한 시점이다. 따라서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만나자고 한 제의는 미사일 발사 의도를 숨기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군사회담이나 접촉 중에는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인 행위를 자제하는 것이 관례다. 북한이 연평해전을 일으킨 1999년 6월 15일도 그랬다. 북측은 오전 유엔사령부와 회담을 하는 중에 우리 해군 함정을 기습 공격했다. 회담을 빙자해 한국 측을 안심시킨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뒤 한국이 군사접촉을 연기하면 자기들은 '선의'를 갖고 어떤 설명을 하려 했는데 남측이 거부했다는 식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미사일 발사를 정당화하려는 명분 쌓기의 측면이다.

군사접촉을 한국이 받아들였다면 북한은 한국군에 미사일 발사가 '정상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의 입을 통해 자기네 입장을 알리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국방부가 군사접촉을 연기한 것은 북한군의 선전 전략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다.

북한의 군사접촉 제의에 대해 다른 평가도 있다. 통일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연락장교 접촉은 군사보장합의서와 연계돼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5월 18일 남북 열차 시험운행을 앞두고 군사보장합의서 체결을 위한 장성급 회담이 열렸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도 북한의 군사접촉 제의를 미사일 발사와 연관시키지 않았다. 윤 장관은 "지난번 장성급 회담이 중단돼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했다"며 "그래서 실무접촉을 하자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 뒤늦은 공개=국방부가 북한의 군사 실무접촉 제의를 3일 받아놓고도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북한의 문제를 탁 드러내 놓고 얘기하기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실무접촉 과정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사일 문제에 집중하다가 6일에야 연기 방침을 결정해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엄중한 미사일 상황과 이를 주도한 북한군의 군사접촉 요구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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