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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정신'으로 성장한 화웨이…트럼프 포위작전에 아사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늑대의 정신'을 앞세워 성장한 화웨이가 그 '늑대 문화'에 발목이 잡혔다.

[뉴스분석]

화웨이는 세계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1위와 2위로 우뚝 선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특히 차세대 통신으로 일컬어지는 5G(세대) 통신 장비 시장에서는 경쟁 업체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화웨이는 미·중 무역분쟁 한복판에서 미국의 십자포화에 '식물기업'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세로 미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 금지 조치에 이어 영국·일본·대만 기업들이 속속 미국 진영에 참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이냐 화웨이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는 최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을 부인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미국의 의심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는 최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을 부인하고 있다.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미국의 의심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물불 안 가리는 '늑대 문화'서 출발 

화웨이의 최근 어려움은 물론 미·중 무역분쟁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중국의 수많은 기업 중 하필이면 화웨이가 타깃이 된 것은 5G 통신의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서 보여준 저돌적인 '늑대 문화'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1987년 화웨이를 창업해 30년 만에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키운 런정페이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늘 '늑대 문화'를 주창해왔다. 런정페이 회장이 강조한 늑대 문화는 "예민한 후각과 불굴의 투쟁심, 그리고 팀플레이"가 골자다. 화웨이 전문가로 꼽히는 양샤오룽은 그의 저서 『화웨이 웨이』에서 "한 번 피 냄새를 맡으면 후퇴 없이 떼를 지어 공격하는 늑대처럼, 화웨이는 경쟁자에 대한 지속적인 공세와 조직 목표를 위해 개인 희생을 마다치 않는 늑대 문화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향해 돌진했다"고 했다. 개방적이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일반 정보기술(IT)기업의 문화와 다른 독재적인 리더십, 상명하복식 기업 문화, 엄격한 규율이 늑대문화의 특징이란 얘기다. 그 과정서 화웨이는 기술탈취·뇌물공여·보안위협 등을 서슴지 않는 기업으로 낙인 찍혔고, 미·중 무역분쟁 와중에 미국의 타깃이 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것이다.

초창기 연구진, 사무실서 숙식

런정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이다. 그는 1987년 화웨이를 창업한 후 홍콩에서 값싼 전화 스위치를 들여와 중국에서 팔았다. 이후 전화 교환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통신 장비회사로 기반을 쌓았다. 화웨이 스토리에 따르면 "화웨이는 초창기 연구 공간과 부엌이 같이 붙어있는 사무실을 썼다"고 한다. 직원들이 바닥에 매트리스만 깐 침구에서 잠을 자고, 연구실 한쪽의 부엌에서 식사를 하는 게 다반사였다. 화웨이가 이 같은 환경에서도 연구인력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파격적인 인센티브 시스템 덕분이다. 프로젝트의 한 책임자급은 CNN과 인터뷰에서 "보너스와 주식 배당금이 기본급을 훨씬 초과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해외 시장은 개도국→선진국 공략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통신 장비를 들고 아프리카나 남미·아시아 등에 먼저 진출했다. 개발도상국에서 낮은 가격으로 승부해 경험을 쌓고 이후 유럽이나 북미같은 선진국을 공략했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 연구소 소장)는 이를 두고 "마오쩌둥 선집을 달달 외우는 런정페이 회장이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마오쩌둥 전략을 기업 경영에 활용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 CNN에 나와 "화웨이는 중국 정부뿐 아니라 공산당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공격했다. 올해 초 CIA는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 국가안보위원회, 군대, 국가정보망 등 삼중의 경비를 지원받는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와 만난 화웨이 순환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인 켄 후 대표는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도 않고 정보 공유도 없다"고 일축했다.

매출 100조 기업으로…끊이지 않는 '중국정부 지원설'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중국이 국영기업 중 ZTE, 민간기업 중 화웨이를 점찍어 집중적으로 육성했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1980년대 후반 중국 통신 시장은 일본 후지쓰 (FJTSF)·스웨덴 에릭슨 (ERIC)·프랑스 알카텔·미국 모토로라(MSI) 등의 전쟁터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중국 당국이 ZTE와 화웨이를 외국 기업에 맞설 상대로 각종 지원을 마다치 않았다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필릅 르 코레 하버드 케네디 스쿨 선임연구원은 "ZTE와 화웨이 육성은 국내 인프라 사업과 금융 지원을 통해 이뤄졌다"고 했다. 화웨이에 대한 중국개발은행의 2005~2011년 지원만 400억 달러(약 47조 5200억원)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이 기간에 개도국 진출에서 벗어나 유럽·아시아 시장을 공략했고, 35개 이상의 사업자에 통신 장비를 수출했다. 2010년 290억 달러였던 화웨이의 매출액은 지난해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스마트폰·통신장비 부품 조달 막혀 …'식물기업' 위기 

화웨이는 특히 스마트폰 사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구글 맵이나 G메일, 유튜브 등을 스마트폰 신제품에 탑재할 수 없게 됐고, 스마트폰 제조에 필요한 칩셋의 공급마저 끊기게 됐다. 화웨이는 물론 삼성전자나 애플, 퀄컴 등에 모바일 칩셋 설계도를 제공하는 영국의 ARM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 IT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화웨이가 ARM의 설계도를 잃으면 완전히 끝장(it' s toast)"이라며 "구글 없이는 생존할 수 있어도 ARM 없이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5G 통신장비 역시 미국 퀄컴, 영국 ARM, 일본 파나소닉 등 부품업체의 잇따른 거래 중단 선언으로 선두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웨이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계열사인 반도체 설계회사 하이실리콘과 중국 내 공급망을 확충하는 '플랜 B'를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통신 장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하이실리콘은 물론 중국 내 반도체 업계가 글로벌 1위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며 "화웨이의 글로벌 공급 체인이 끊긴다면 '식물기업' 처지에 내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이 화웨이의 목줄을 죄는 이런 상황이 반드시 미국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글로벌 IT기업들의 공급망은 갈수록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며 "미·중 무역 전쟁이 계속될수록 양쪽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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