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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리 쓴소리-2%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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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건의 세미나가 있었다. 두 건 모두 만화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문화와 산업 전반의 향후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 관심들이 높았다. 그 세미나에서 청취한 발제보다 토론회를 열기까지의 과정과 괴리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크다.

월드컵 열기로 묻혀버린 이슈들 중 하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2006년 6월 27일, ‘정부 합동 한미 FTA 2차 공청회’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는데 시작도 못할 정도로 격렬한 토론회였다. 마침 하루 전인 26일, 이 사안과 관련하여 ‘업계와 긴밀한 협의 창구를 구축하기 위해 민/관 전략회의를 정례화 한다.’는 산업자원부의 발표를 무색하게 하는 토론회였다.

한편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업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몇 개월 전부터 대책 마련에 부심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로 지난 6월 21일, ‘한미 FTA 협상과 국내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의 향방’이라는 세미나가 남산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열렸다. 두 건의 세미나로 드러난 추진 입장의 주장은 ‘이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며 반대 입장에서는 ‘음모론’과 ‘즉각적 생존권 박탈’이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이렇게 극한 대립과 정 반대의 결론이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 대립의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지만 단순하게 보자면 ‘업계와 긴밀한 협의’를 배제한 ‘그들만의 협의’였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26일에는 ‘DRM 호환성 문제를 둘러싼 법적 쟁점과 과제’라는 다소 재미없는, 그러나 첨예한 대립을 낳고 있는 사안에 대해 호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토론회가 열렸다. 흔히 복제 방지 기술로 통용되는 DRM은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이다. 협의의 DRM은 디지털 콘텐츠의 무단복제, 배포, 사용을 방지하여 저작권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해 주는 기술과 서비스를 말한다.

이 날의 쟁점은 다양한 DRM을 서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자는 ‘상호운용성’을 높이는 것이 어떠하냐를 토론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토론회 말미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우려가 결론 아닌 결론이 되어 버렸다. 그 배경은 이렇다. 복제 방지 기술은 특정 기업의 독립적(호환성이 없는) 개발이나 호환이 되는 기술, 또는 개발 소스를 공개하는 형태로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느 방식이 개념적으로 옳으냐가 아니라 어느 방식이 그 회사에 이득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MS사의 복제방지 기술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다. 이것은 그 기업의 사업 모델이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APPLE사는 독자적인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것은 그 기업이 콘텐츠 공급부터 이용 기기들까지 모두 공급하기 때문에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기업의 사업모델이 결정적 이유가 되고 그 근원에는 소비자의 요구가 절대적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시각 차이는 늘 존재한다. 그 차이는 어쩌면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저마다 처한 여건과 위치에 따라 자기 이해가 다르고 이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 경우의 수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해법을 제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화이다. 만화계에도 이 대화가 2%쯤 부족하다.

거대자본이 만화에 관심을 쏟고 거대한 인접 문화가 만화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의 경우 일반적인 만화 이해도는 만화 내부에 위치한 사람들보다 낮거나 다를 수밖에 없어 2%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들의 프러포즈가 거칠게 느껴지거나 뜬금없을 수도 있다. 만화를 위한다는 제안이 만화계의 쓰나미가 되기도 하고 만화를 확장시킨다는 의도가 만화를 벗겨 버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 예는 거대 자본의 만화 유입 과정과 인접 문화들의 만화 이용 행태를 통해서 표출되는 현실이다.

반면에 만화계에서도 이들과의 대화에 2%가 부족하다. 만화계 내부의 정서와 입장으로만 외부를 판단할 때는 변화를 모색하기가 어렵다. 지난 수십 년 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의도적 변화보다 타의적 혹은 시대적 흐름에 의한 강제적 변화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본다면 외부 자본의 프러포즈나 인접 문화의 만화 활용을 대할 때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외부의 접근은 그 목적이 뚜렷하다. 만화를 통해서 이익을 보겠다는 것이 물론 당연한 배경이다. 단지 현재의 시장 규모에서 이익을 나눠가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재편성해서 확대하여 이익 규모도 확대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당장의 현실에서 벗어나 만화계의 변화를 일정 부분 요구하게 된다.

그 요구란 근대적 유통 시스템의 도입이라거나 새로운 만화 스타일의 선호, 기득권의 일정 부분 포기라는 아픔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는 생경한 제도와 환경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혹은 잘 못된 방향의 제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위의 세미나 사례들처럼 세상에서 흔히 존재하는 현상이다. 서로가 대화가 없다면 서로의 상상과 선택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가 긍정적인 경우는 학습의 효과를 거쳐 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만화계의 내 외부 연계에 있어서 시행착오는 외부의 시선을 회피하게 하는 부정적 결과로 작용한다. 따라서 만화계 내부의 2%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는 내부의 인식 변화 또는 외부의 2% 부족한 이해도를 보충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을 찾는 것이다.

부자지간에도 언성을 높일 때가 있다. 대화가 없는 관계일수록 싸움의 빈도가 잦아지는데 부자지간은 그나마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핏줄의 드라마틱한 생리상 눈물 몇 방울과 함께 포옹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만화와 외부 또는 인접은 부자지간이 아니라 거래관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포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한 시기는 대화를 하자고 손을 건네는 그 때가 최적기이다.

코믹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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