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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낙타의 길을 꽃밭 되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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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시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시인

우리 모두 이념이나 사상의 꽃밭에서만 머물지 말고 낙타가 되어 꽃밭의 향기를 사막으로 퍼뜨려야

일본의 야마하는 130년이나 된 기업이다. 이 기업의 창업자 야마하 도라쿠스는 나무꾼이었다. 그는 악기를 통하여 어떻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종류의 악기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공연장, 오디오, 오토바이 사업까지 하였다. 야마하 기업은 어떤 신사업을 하더라도 ‘즐거움과 행복 추구’라는 초심(初心), 즉 설립자의 정신과 기업 핵심 가치를 잃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단기이익보다는 기업정신과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한 결과 130년이 넘도록 글로벌한 기업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100대 기업 가운데 100년 이상 된 기업은 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8개 기업들은 과연 초심을 잃지 않고 100년 이상을 갈 수 있을까. 국가도 마찬가지다. 초심을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결정되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신라, 고려는 물론 조선도 민본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사색당파와 붕당정치에 빠져 당리당략의 싸움만 하다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건국정신과 가치 위에 세워졌는가. 당시 한반도에는 유물론과 공산당 독재에 기초한 공산주의의 붉은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군주제와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의 야욕이 호시탐탐 침탈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좌로 대륙을 보아도, 우로 해양을 보아도 살길이 없을 때 우리 민족은 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라의 3대 요소는 주권·국민·국토다. 그러나 사람의 몸 안에도 영혼이 있어야 하듯이 나라를 세우려면 나라의 정신, 곧 건국정신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상해 임시정부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인 김구·김규식·안창호·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이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래서 신라와 고려는 불교가, 조선은 유교가 건국정신을 이루었듯이 대한민국은 그 건국정신을 기독교 사상과 정신, 가치로 하여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운 것이다.

임시정부의 선각자들이 우리나라를 종교국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정신과 가치 위에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건국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6·25전쟁이 있었지만, 끝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힘이 없을 때 한국교회는 교육·문화·구제를 책임지는 유사(類似)정부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산업화, 근대화가 될 때 한국교회 역시 물량주의, 세속주의에 매몰되면서 점점 초심을 잃어갔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이든 종교가 타락하거나 순기능적 공헌을 하지 못하면 사회가 혼탁해지고 쇠락하게 된다.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도 결코 건국정신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 헌법이 오래되었으니 시대와 문화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옷을 입힐 수는 있겠지만, 건국초기의 이념과 정신, 가치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초심을 지켜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세 단계로 보았다. 맨 먼저 20~30년 주기의 국면사(局面史), 이어서 80~100년 주기의 구조사(構造史)이며, 그 구조사들이 모여 마침내 1000~2000년 만에 맞을 수 있는 문화사적 대변혁을 이룬다는 것이다. 브로델의 예견대로 세상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방면에서 다양하게 급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말아야 할 기본 가치와 정신만큼은 붙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생명존중이나 인권의 본질을 흔들거나 소중한 건국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쓴 ‘꽃밭 여행자’라는 시가 있다.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 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 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 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려라...(생략)’ 이럴 때 한국교회가 낙타가 되어 사막으로 가야 한다. 타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가 자기 꽃밭에서만 안주하며 스스로 카르텔을 만들고 이너서클화만 하면 안 된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세우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나라 역시 창조적 국부를 창출하고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우리 모두 이념이나 사상의 꽃밭에서만 머물지 말고 오히려 낙타가 되어 꽃밭의 향기를 사막으로 퍼뜨려야 한다. 그럴 때 낙타가 가는 사막의 길이 꽃밭이 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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