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계에 「정풍 회오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국의 지식인들이 된서리를 맞고있다.
중국의 강경 지도부는 언론계, 작가·예술가 등 문예계, 대학 및 연구소 등 이론계에 숙청의 전조로 보이는 체포와 반 부르좌 공격에 집중 포화를 가하고있다.
중국은 광명일보·요기일보·중국법제보 등 민주화운동에 동조했거나 긍정적 입장을 보였던 신문의 책임자를 교체하는가 하면 광명일보의 저명한 여자언론인 「따이칭」(재청)괴 2명의 젊은 인민일보 기자,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지 기자 1명을 체포한 것으로 보도됐다.
홍콩의 한 중국계 언론인은 현재 중국의 보도매체 종사자들은 「자아비판」의 글은 물론이고 민주화운동당시 주동을 했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적어 낼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인에 대한 제재와 함께 해외로부터의 보도도 통제되어 북경의 일류 호텔 등에서 판매되던 외국 신문·잡지가 지난주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이 같은 조처는 외국의 언론들이 중국사태를 왜곡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외교부대변인 「리진화」(이금화)의 설명이다.
대대적인 정풍의 회오리바람이 예상되는 곳 중의 하나가 작가·예술가 등 문예계 인사들이다.
「연안문예학회」·「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연구소」등은 지난11∼l2일 이틀간 북경에서 문예계 인사 좌담회를 개최하고 반 부르좌 자유화에 대한 의견교환과 함께 새로운 문예 정풍을 실시키로 결의했다.
70여명의 핵심 문예계 인사가 참여한 이 좌담회에서는 실각한 「자오쯔양」(조자양) 중공당 전 총서기가 문예계 부르좌 자유화사조를 보호한 가장 큰 「우산」이며 조가 누차 강조했던 당의 문예계에 대한 「소 간섭, 소 개입」정책은 당의 문예계에 대한 영도를 포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들 문예계 인사들은 아울러 중국은 물론 대만·홍콩·마카오 및 전세계 화교들의 지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던 TV 연속물 『하상』을 『민족문화전통을 부정하고 중국혁명 및 사회주의건설 역사를 훼손시켰을 뿐 아니라 서구화를 고취시킴으로써 전국에 걸친 사상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한 것은 오늘의 중국 문예계가 처한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소효강 등 40세 전후의 작가 3명이 집필한 이 TV 연속극은 중국문명의 요람인 황하의 황색을 대륙문명·농업문명·보수문명으로 규정하는 반면 현 자본주의 문명을 해양문명으로서 남색으로 상징하고 공업문명·진취적 문명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6회에 걸쳐 방영된 이 『하상』은 중국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황색문명의 테두리를 벗고 남색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맺고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도 남색문명으로 분류한 이 TV 연속물은 방영직후 중국고위층간에 대단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적극적인 개혁·개방론자였던 조자양 당시 총서기는 「왕전」(왕진) 국가 부주석 등 노 간부들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방영을 허용하는 한편 『하상』의 비디오 테이프 한 벌을 싱가포르 「리강야오」(이광휘) 수상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6·4 천안문」사태이후 이 작품의 작가 소씨 등 2명은 체포되고 나머지 한사람은 미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로큰롤과 패션쇼공연이 금지됐다는 명보의 보도는 중국 문화계의 앞날을 상징적으로 예시해주고 있다.
사회과학원을 비롯한 연구소와 대학교수 등 학자 및 연구원들이 다수 검거된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당국은 체포자수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서방통신은 7천명 선으로, 문회보 등 홍콩신문들은 1만명 선으로 추산하고있다.
중국당국이 지식인들에 대한 체포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지난번 북경사태당시 재2선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시위를 조직·계획했던 것이 바로 지식인들 이였다는 시각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산당과 지식계층과의 관계는 『지식계층이 없으면, 현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의 말과는 달리 항상 대립과 모순의 관계를 빚어왔다.
공산당의 일당독재체제 아래서는 다원화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이 기본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갈등관계에 있으며 49년 소위 신 중국 설립 이후 정치적 파동이 있을 때면 항상 지식인들이 된서리를 맞곤 했다.
「경제적 개혁·개방」에 「정치·사상적 통제강화」라는 방침을 굳힌 중국에서 지식인의 입지는 더욱더 어려울 것 같다.
【홍콩=박병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