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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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종필 공화당총재로서는 정계개편을 해볼만한 것이다. 그의 공화당만으로는 현재의 제4당이란 위치에서 탈출할 수도 없고 단독집권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말이 나오는 대로 민정당과의 연합이 이뤄진다면 김 총재의 정치전도에는 커다란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양당이 함께 미는 대통령후보에의 꿈도 가질 수 있고 내각제가 될 경우 유력한 초대 수상후보일 수도 있다.
민정당 주요간부들의 면면을 보면 정치서열이나 명성에 있어 김 총재를 누를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 노태우 대통령이야 단임의 임기를 마치면 물러설 테니까 문제가 안 되고 다른 대부분의 당 간부들이 구 공화당 또는 유정회 출신들로서 과거 김 총재 밑에 있었거나 까마득한 후배들이다.
이쯤 되면 민정당이 비록 공화당에 비해 덩치가 훨씬 더 큼지막하지만 김 총재가 「제1인자」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거꾸로 민정당 쪽에서 보아도 공화당과의 연합은 할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무엇 하나소신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집권 1년 반이 되도록 정권의 중심이 잡히지 않고 있는데 공화당과의 제휴가 이뤄진다면 국회에서 보기 좋게 과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소신대로 밀고 나갈 수 있게된다. 장차 내각제개헌까지 성공한다면 계속 집권세력의 찬스도 커진다. 왜 이것을 마다하겠는가.
최근 민정·공화당에서 나오고있는 정계개편론을 훑어보면 대충 이런 배경이 읽혀진다. 그후 나타나고있는 양당간의 노골적인 밀월을 보면 어쩌면 양당의 제휴가 구체적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도 예감케된다.
만성적인 정국의 표류상태나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치수요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우리정계에 무슨 변화가 와야한다는 데는 많은 공감이 있다.
현재의 여소야대 4당 체제는 마치 사공 없는 배처럼 주도세력이 없어 하는 일도, 되는 일도 없는 표류를 계속하고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이런 상황이 개선될 어떤 힌트도,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정계개편이나 보수연합 같은 타개책이 구상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정·공화간에 오가는 개편론이 국민의 뜻이나 정치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가령 이들의 합작에 의한 국회지배가 어떤 현상을 가져오겠느냐 하는 한가지 점만 생각해보자. 그럴 리 없다고 믿고싶지만 이들이 5공청산도 그만 하자, 고칠 악법은 더 이상 없다고 나온다면 그것이 국민의 뜻이겠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야당의석이 많은데도 민정당은 5공 청산과 각종 입법문제에서 굳세게 버티고 있고 요즘에는 밀입북에서 조성된 보수적분위기를 틈타 보안법도, 안기부법도 고치지 말자고 나오고있다. 이들이 국회를 지배할 경우 더 완강하게 야당의 소리나 여론을 못들은 척 할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계 개편론이 명분을 얻고 국민에게 설득력을 갖자면 지금과 같은 「제논에 물대기」로 보이는 개편론 이어서는 곤란하다. 오늘의 우리 사회상황에서 바람직한 정계개편은 최소한 두 가지 필요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보수세력의 물갈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은 수십년의 권위주의 통치 밑에서 보호돼오면서 도덕성을 많이 상실했다. 친일파·극우테러리스트·졸부들의 보호막이 돼왔는가 하면 정당성 없이 정권을 잡은 세력의 집권유지를 위한 급조들러리 정치인이 큰 흐름을 이루기도 했다. 국민의 직접 지지와 상관없이 진출한 관료군도 유력한 요소가 돼왔다.
보수세력이 이런 체질을 그대로 갖고 보수연합으로 계속 득세를 추구한다면 여기에는 명분도, 도덕성도 나오지 않는다. 가령 유신과 5공 세력이 합작한다면 가장 보수층 국민까지도 지지하기가 거북할 것이다.
따라서 보수연합을 하자면 체질의 자정과 참신한 주도세력의 형성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정계에 「참신보수세력」이 적은 것은 잘 알지만 그런 중에도 나쁜 과거와 인연이 없는 사람, 인연이 적은 사람을 하나씩 둘씩이라도 전면에 내세우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의 고려사항은 진보세력의 장내화 문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현재의 4당만으로는 대변되어지지 않는 세력파 계층이 곳곳에 있고 4당이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여러 구석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가령 최근의 교원노조파동이나 지난번 여의도 농민시위·대자조선의 노사분규 등을 생각하면 4당이 이런 문제들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문제의 당사자들이 현재의 4당에 의해 자기들이 대변된다고 믿고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면 격렬한 시위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소외계층문제를 더 이상 제도권밖에 방치할 수는 없게됐다. 우리체제가 유지되고 계속 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도 4당이 대변할 수 없는 세력을 대변할 수 있는 진보세력이 장내에 들어오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체제 밖에서 그들이 시위로, 농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민련·진보정치연합 등이 영등포 을구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수세력은 이들에게 제도권 안에 활동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선거법·정당법 등의 개정은 물론 정치자금·조직확보 등에 따르는 각종 제약을 덜어주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정치권은 이 두 가지 사항을 깊이 생각해야하며 정계개편도 그런 바탕 위에서라야 명분과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단지 머리 수 규합에 의한 기득권세력의 계속 득세만 생각한다면 길게 보아 그들의 장래는 어렵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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