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엄” 의식이 인생의 나침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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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20면

존엄하게 산다는 것

존엄하게 산다는 것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트 휘터 지음
박여명 옮김
인플루엔셜

인간 두뇌 태어날 때 텅 빈 박스 #실패·만남 반복하며 자아 형성 #흔들려도 꾸준하게 밀고 나가라

나는 한두 시간 쉬지 않고 춤 연습을 하는 것보다 사람과 마주 보고 커피 마시는 일이 더 체력 소모가 크다. 도서관 콘센트에는 붉은 버튼이 달려 있는데, 양쪽에 켜짐 그리고 복귀라고 적혀 있다. 한쪽을 누르면 불이 켜지고 반대편을 누르면 꺼진다. 켜짐의 반대말은 복귀인가 보다. 꺼짐이라는 말보다 복귀라는 말이 더 좋다. 종일 켜져 있다가 잘 때는 복귀하는 것. 잘 자, 라는 말 대신, 잘 복귀해. 오늘도 수고했어, 라고 말해본다. 이제 자야지, 라는 말 대신 이제 복귀해야지, 라고 말해본다. 뭔가 수고한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낸 하루라도, 눈을 뜨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수고한 것 같다.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 여파가 남는 이유, 나로 복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을 만날 때의 나와 일상의 내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다른 나이다. 아직 내 중심이 잡혀 있지 않아서, 만나는 상대에 따라 내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다. 관계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존엄하다는 생각을 품는 게 중요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다. 관계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존엄하다는 생각을 품는 게 중요하다.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의『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 문제, 어떻게 하면 내면의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가, 왜 그것이 중요한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쏟아지는 정보와 사회의 급변 속에서 그는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존엄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 방향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170쪽). 그런 인간을 꿈꾼다. 이 책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 존엄의 의미를 훑으며, 그것을 뇌과학과 연계해 쉽게 풀어낸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다양한 단일 행동과 반응을 조화롭게 조정하기 위해 상위의 패턴을 형성하고 자동화시키는 단순화 작업”(121쪽)을 한다. 이것은 나아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 그리고 자아상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한 사람은 내적 질서를 세울 방향성을 갖는 데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125쪽)는 것이다. 휘터는 흥미로운 예시를 끌고 온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학습 없이 네 다리를 버티고 일어선다. 어미의 젖을 찾아내고 빨기 시작한다. 망아지의 작은 뇌를 들여다보면, 뇌의 대뇌피질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선천적으로 형성된 행동 패턴이 있어서 자극만 받으면 새끼 망아지는 저절로 일어설 수 있고, 어미의 젖을 찾는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형성된 신경망이 없다. 뇌에 미리 입력된 행동 패턴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텅 빈 박스여서, 스스로를 채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를 채울 수 있을까. 휘터는 이 화두를 존엄이라는 흥미로운 개념과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 방법은 ‘실패’다. 두 번째는 ‘만남’이다. 이 두 가지 경험은 개인이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을 합치면? 실패와 만남을 같이 하면 ‘만남의 실패’가 되지 않을까. 실패도 하고 만남도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둘을 한꺼번에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것들에 실패했지만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에 가장 많은 실패를 한 것 같다. 실패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나의 내면의 기준, 혹은 자아상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나인 것에 자꾸 실패하는 것이다. 계속 만남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실패하도록 두는 건 어떤가. 내가 나인 것에 실패하는 경험이 쌓여서 내가 되는 것. 나는 왜 고정되고 안정된 인간이 아닌가? 하고 질책하는 것보다, 매 순간 변하는, 유연한 나를 받아들이는 것. 오락가락을 내 내면의 나침반으로 삼고 (실제로 나침반의 화살표는 매우 흔들거린다) 꾸준히 밀고 가는 것이다. 이런 나도 괜찮다고 말이다.

시인 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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