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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보물선 사기 연루자가 신임 대표가 됐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물선 인양’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시도한 혐의로 검찰 고발당한 사람이 최근 코스닥 상장사의 대표가 됐습니다. 정말 경영 능력이 뛰어나서일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요.

코스닥 상장사의 체질 개선 노력?
에스제이케이는 자동차부품 및 전자부품 전문 제조기업입니다. 2017년 세진전자에서 이름을 바꿨습니다. 2년 연속 매출액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가 하나 떴습니다. 6억 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보유한 채권자가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신청을 제기했다고요. 그래서 주식거래는 다음 날인 14일부터 정지됐습니다.

주식 거래가 정지된 가운데 14일 또 다른 공시가 올라옵니다. 임시 경영지배인을 선임했다고 합니다. 선임 목적으로 ‘회사 경영 정상화 및 효율화’를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선임된 경영지배인은 ‘대표이사와 협의하여 회사 경영에 참여’할 거라고 합니다. 임기는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는 오는 29일까지고요. 주주총회 소집공고 내용을 보면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사내이사로 취임할 것으로 보입니다.

폐업 위기에 놓인 회사를 맡게 될 새로운 경영지배인은 체질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임 및 모바일 콘텐츠 개발 및 판매’, ‘식품 및 건강기능식품의 제조, 유통 및 판매’ 등의 사업목적을 정관에서 빼고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자동차 전장부품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회사 이름도 에스제이케이(SJK)에서 씨엔모비스(CN MOBIS)로 바꿀 예정입니다.

돈스코이호 모형 [연합뉴스]

돈스코이호 모형 [연합뉴스]

왜 하필 보물선 사기 사건 연루자에게…
문제는 새로 대표가 될 인물입니다. 최용석 CPA파트너스KR 대표.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호’ 사건과 관련된 인물입니다. 맞습니다. 그가 바로 지난해 7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자처했던 신일그룹 대표입니다. 신일그룹이 150조 원에 상당하는 금괴가 들어있는 군함을 인양할 계획이라고 시장에 퍼지면서 그가 지분을 매입한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도 급등했습니다. 여기에 다단계로 팔리던 암호화폐 ‘신일골드코인’ 논란까지 겹치면서 시장이 시끄러웠습니다.

회사와 관련된 의혹을 명확히 해명하겠다고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신일골드코인과는 무관하다”며 “(암호화폐를 발행한) 신일그룹 싱가포르와 이름이 같아 오해하는 것”이라고 적극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일그룹은 신일해양기술로 다시 태어난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부당국과 협의 및 승인을 거쳐 돈스코이호를 인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신일해양기술은 간담회 전날 최고경영자(CEO)가 최 대표로 바뀌었습니다. 직전 CEO는 모든 보물선 코인 사기 사건의 주범의 누나입니다.

보물선 테마는 사기로…주가조작 혐의는 진행 중
보물선 사기 관련 일당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최근 끝났습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최연미 부장판사는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실렸다고 속여 투자금을 모은 혐의(사기)로 기소된 신일그룹 전 부회장 김모(52)씨에게 징역 5년을, 신일그룹국제거래소 전 대표 허모(58)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전 신일그룹 대표 류모(49)씨는 징역 2년을, 돈스코이호 인양을 총괄한 진모(68)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요. 정말 보물선 코인과는 관계가 없는 건지 최씨는 형을 선고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최씨의 혐의가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달 말 돈스코이호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신일그룹 전 대표인 최씨를 포함한 관계자 8명을 부정거래 및 미공개정보 이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2005년엔 횡령 혐의...회사는 상장폐지
최씨가 검찰 수사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지난 2005년 상장 폐지된 비이티 대표이사였습니다. 그는 회사자금 무단인출(횡령)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자기앞수표 등 106억 원을 회사 자산으로 계상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비이티는 외부감사인의 감사범위제한 한정 사유로 상장 폐지됐습니다.

Rani‘s note 찜찜한 투자는 제발…  
선입견은 무섭습니다. 과거 횡령 혐의를 받았고, 보물선 사기 사건에 연루됐지만, 위기에 처한 회사를 맡아 멋지게 살려낼 수 있습니다. 파산신청으로 주식 거래가 정지됐는데도 해당 기업의 주식 투자자 게시판에는 “누가 됐건 M&A 테마는 최소 두 배는 간다”며 흥분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기분이 찜찜합니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또 한탕 해 먹으려고 한 거 아니냐”고 조소합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찜찜한 경우엔 최대한 멀리 피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요.

고란 JOIN:D 기자 neoran@joongang.co.kr
https://join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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