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가 재정이 화수분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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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세종시로 내려가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이 나라의 곳간 사정을 직접 살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국가의 재정 형편을 제대로 알아야 국민이 낸 세금을 알뜰하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재정의 원칙을 명백히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세수를 늘려 오히려 단기 재정지출을 상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 지출이 불가피하더라도 단기 소모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 씀씀이를 보면 효율적으로 재정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이 성장잠재력 확충을 전제로 “고용 확대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과 같은 고용 안전망 강화에 재정의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했지만, 과연 효율적으로 재정이 쓰일지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정을 투입해 늘어났다는 일자리 상당수는 생산성과 관련 없는 노인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노인 일자리는 쓰레기 줍기, 초등학생 등·하교 동행 같은 일을 하고 월급으로 몇십만원을 받아가는 게 현실이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직접 일자리 참여자 81만4000명 중 민간 일자리 취업으로 이어진 참여자는 16.8%에 그쳤다고 고백하면서 개선책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비효율적 재정 지출은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으로 내려가면 더 심각하다. 또 출산율을 높인다며 물 쓰듯 재정을 퍼부은 저출산 사업도 효과는 오간 데 없다.

그러는 사이 조세부담률은 지난해 21%를 돌파했다. 그런데도 정부의 재정 중독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470조원의 수퍼예산도 모자라 지금도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추진되고 있다. 내리 3년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에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라”고 권고했지만 기존 방식대로 허투루 돈을 낭비하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저성장의 터널에 장기간 빠져들 것 같으니 성장동력 강화에 쓰라는 주문인데 추경안에 그런 용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올 들어 세수 진도율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있다. 저성장 여파로 가계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올 1분기 30대 상장사 영업이익은 1년 새 반토막이 났다.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고 가계가 움츠러드니 세금도 덜 걷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  재정이 튼튼하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급격한 고령화로 한국도 10년만 지나면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고 사회복지 수혜자는 급증하게 되면 재정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재정은 인구 변화의 충격과 저성장의 그림자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봐야 한다. 재정이 화수분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