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스콜라리 vs '샌님' 도메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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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프랑스-포르투갈의 준결승전. 기자에게 배정된 자리는 그라운드에서 매우 가까웠다. 10m 정도 앞쪽에 포르투갈 벤치가 있었고, 스콜라리 감독의 말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포르투갈 벤치에서 10여m 오른쪽에 있는 프랑스 벤치와 도메네크 감독의 움직임도 한눈에 들어왔다. 피를 말리는 90분 경기 동안 두 감독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다혈질 스콜라리 포르투갈 감독(左)과 선생님 같은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뮌헨 AFP=연합뉴스]

스콜라리는 소문대로 다혈질이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선수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했다. 벤치를 박차고 앞으로 나갔다가 특유의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서기를 수십 차례 했다. 사이드 공격수 피구와 호날두에게는 공격한 뒤 그냥 돌아서지 말고 상대 선수 한 명에게 붙어 수비하라고 강조했다. 티셔츠와 운동복 하의, 운동화 차림의 그는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이 나올 때마다 큰 몸짓과 목소리로 항의했다. 전반 33분 페널티킥을 내주고 3분 뒤 비슷한 상황에서 포르투갈에 페널티킥을 주지 않자 심판과 프랑스 벤치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도메네크 감독도 맞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몸싸움이 일어날 뻔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도메네크 감독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처럼 차분했다. 지단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순간에도 자리에 앉아 가볍게 주먹을 흔들 뿐이었다. 하지만 후반 들어 포르투갈의 반격이 거세지자 초조한 듯 자주 그라운드 쪽으로 나왔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어 주위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스콜라리는 끝날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공격이 풀리지 않고, 그나마 좋은 기회에서 부심이 잇따라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자 체념한 표정이 역력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는 조용히 손뼉을 치며 경기 결과를 받아들이고, 상대를 축하했다. 감격에 겨워 펄쩍펄쩍 뛰던 도메네크는 이내 평정을 찾아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월드컵 12연승(승부차기 1회 포함)의 명장(스콜라리)과 '선수에게 휘둘리는 허약한 지도자'라는 혹평을 들었던 감독(도메네크)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뮌헨=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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