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조명한 ‘장수의자’ 어르신 쉼터로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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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4일 서울 구로구 언덕길에 설치된 ‘장수의자’에서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구로구청]

14일 서울 구로구 언덕길에 설치된 ‘장수의자’에서 주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구로구청]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경인로 27길. 경사가 30도쯤 되는 언덕길이다. 이 언덕 중간쯤 있는 전신주에 손쉽게 접었다 펼 수 있는 의자가 매달려 있다. 지난달 구로구청에서 설치한 ‘장수의자’다. 횡단보도 신호등 기둥과 언덕의 전신주 등 총 15곳에 설치됐다. 주민 김선흠(73)씨는 “언덕을 걷다가 숨이 가쁘거나 신호등을 기다릴 때 자주 이용한다. 작은 의자 하나가 효자 같다”고 말했다.

무단횡단 막으려 만든 간이 의자 #서울 구로, 천안시 등 속속 도입

장수의자가 전국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충남 천안시가 잇따라 설치했다. 전북 남원시도 조만간 이 의자를 둔다. 장수의자는 지난 3월말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처음 생겼다. 서서 신호를 기다리기 힘든 노인이 무단횡단을 하다 유발할 수 있는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취지다. 무단횡단을 안 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장수의자라고 지었다. 이 의자는 유석종(55) 남양주시 별내파출소장이 개발했다. 수십 명의 노인들에게 무단횡단의 원인이 “서 있으면 다리랑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게 계기가 됐다. 유 소장은 “장수의자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지자체들의 문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횡단보도 의자’에 관심을 보이는 건 노인 보행 사고가 심각해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4185명 중 보행 사망자는 40%(1675명)였다. 이 가운데 노인 보행 사망자가 54%(906명)에 이른다. 이중 37%(335명)가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영국 BBC는 인터넷 기사에서 최근 장수의자를 소개한 한국 기사를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장수의자를 ‘longlife chairs’로 지칭하면서 ‘한국의 한 도시가 특별한 의자를 설치해 기다림에 지친 노인들을 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장수의자를 개발한 유 소장은 노인 교통안전사고 예방 공로로 지난 13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이상재·임선영 기자 lim.s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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