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료부패로 외국기업 곤혹 |개방화민주화 바람 타고 하급관리들 자율권 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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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렵게 중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앞으로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인들이 중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관료 및 기업 간부들의 독직·부정·뇌물수수 등으로 골탕을 먹고있다.
이들 외국 기업인들 중에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뇌물과 뒷거래가 횡행하고 있는데 질려 기존 업체를 철수시키거나 아예 거래선을 딴 곳으로 돌리는 경우도 근래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자유·공개 경쟁에 익숙해있는 외국 기업들은 이 곳 중국 땅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뇌물·연줄 등이 오히려 경쟁에 이길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고는 상거래를 계속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뇌물 등의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상거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반대 급부가 없는 일방적인 손실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을 더욱 푸념케 한다.
심천 경제특구에서 수년간 중국 범아상사와 교역을 해 온 미국 기업인「개리슨·루소」씨는 『중국에서 일을 하려면 뇌물을 쓰지 않으면 안되고 뇌물을 써봤자 돌아오는 소득이 없는 게 중국 사회의 특징』이라며 거래선을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 사회 곳곳에 뇌물·부정 등이 판치게 된 것은 불과 최근 10여 년 사이의 현상이다.
10년 전 만 하더라도 상거래를 트기 위한 통관 절차에서 외국인들은 볼펜 한 자루 정도 선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비합리적인 관행은 중국 사회의 개방화·민주화 추세에 맞추어 더욱 극심하게 되었다는 게 공통적인 분석이다.
부정의 양태도 단순한 뇌물수수 차원을 벗어나 다양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외 상거래를 관장하고 있는 관리들이나 기업 간부들은 외국 기업가들에게 상거래 허가 및
알선을 해주는 대가로 자녀들의 해외 유학을 부탁하거나 외국 이민을 위한 제반편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유학이나 이민을 부탁하는 경우는 지난 6월 천안문 사태 이후 국내 정정이 불안해지자 더욱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부정이 사회 곳곳에 퍼지게된 것은 개방화·민주화에 따른 하급 관리들의 팽창과 권한 강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급 관리들의 자율권이 많아지면서 부정부패가 일반화되었다는 얘기다.
대폭 늘어난 하급 관리들은 대부분 고위층과 연줄이 닿아 있어 연고를 이용한 임용이나 영향력 행사는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한 예로 지난 87년 범아상사 부사장직을 사임한「닝게」씨는 현 광동성 부서기인「예수안핑」(엽선평) 동생의 아내다.
그녀는 외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범아상사의 실세로 통하고 있다.
홍콩이나 심천특구 등에 현지 법인을 차려놓은 외국 수출회사들은 수입 회사를 알선해주는 관리들에게 어김없이 1∼3%의 리베이트를 바치지 않으면 거래선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수출 회사만 애로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입회사들도 중국 제품이 당초 계약한 내용보다 품질이 훨씬 떨어지거나 용량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가짜 물품까지 인도돼 낭패를 보는 수가 많다.
이는 중국 당국의 품질 검사가 관리들의 뇌물 수수로 부실해지기 일쑤고 게다가 가짜 품질검사증까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관인과 서명이 게재된 백지 품질 검사증은 암시장에서 2백 달러 정도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달 전 유럽의 한 수입상은 가축사료로 쓰기 위해 중국산 콩을 선박m척 분량이나 수입했으나 이물질이 섞여있고 실제 분량은 당초 계약 내용보다 10%가 미달했다.
현재 중국 관리나 회사 간부에게 가장 인기 있는 뇌물품목은 컬러TV와 비디오.
이들은 이 정도의 뇌물은 내놓고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게서 뇌물 받은 사실을 공공연히 자랑하면서 우회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비합법적 사회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중국 당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대대적인 사회악 일소정책을 펴고 있지만 일시적인 바람으로 지나칠게 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천안문 사태로 중국에 대한 신뢰가 당에 떨어져 당국의 대대적인 PR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보따리를 싸고 있는 외국 기업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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