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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가 간신히 만든 식량지원 분위기에 찬물 끼얹은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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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연구진이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진 WFP&FAO]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연구진이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진 WFP&FAO]

북한이 9일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미사일(당국 추정)을 발사하면서 정부의 대북 식량 추진 노력이 동력을 잃는 분위기다. 지난 4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음에도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대북 식량 지원 의사를 공식화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한국이 (대북 식량지원)진행한다면 우리는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함께 하진 않겠지만 막지도 않겠다는 취지다.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장애물이 하나씩 치워지는 수순이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에서 언급됐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북한 식량 보고서를 썼던 마리오 자파코스타 연구원은 8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분위기를 감안, “북한 식량 사정을 고려할 때 3주 내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까지 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대북 식량지원을 한다고 우리가 비핵화 협상장에 다시 나올 거란 생각은 오판이라는 뜻을 북한이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한국 식량지원에 불개입” #한국, 미국의 묵인도 얻어냈는데 #북 “낯짝” 대남 비난 다음날 도발 #‘No 미사일’ 자랑한 트럼프 곤경

자파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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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앞서 한국 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공식화한 다음 날(8일) 국방부를 향해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제 할 짓은 다하고도 시치미를 떼고 우리의 정상적 훈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중략)한다”고 했다. 이어 외무성 대변인도 “중뿔나게(주제넘게) 나서 가시 박힌 소리를 한다”고 남측 정부를 비난했다.

이번 발사는 미국에도 지난 4일 발사와는 달리 더 무거운 메시지를 던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발사 거리 등으로 볼 때 지난 4일의 발사체보다 수위가 더 높기 때문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강도를 차차 높이며 도발한다’는 기존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며 “한·미를 압박,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다시 점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 상황에서 식량을 지원하면 ‘쌀 주고 뺨 맞는’ 경우가 될 것”이라며 “식량 지원은 비핵화 협상이 진전된 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번 도발로 북한과의 협상을 주요 외교 성과로 꼽아 온 트럼프 대통령도 곤란한 입장이 됐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북한은 (핵)실험도, (로켓·미사일) 발사도 하지 않고 있다(No testing, no missiles)”고 자랑해 왔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비핵화 협상과 제재 해제를 빨리 하자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해석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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