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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벗어날 전기 잡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달 29일부터 15일까지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IMF (국제통화기금) 연차협의단이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을 토대로 원화 환율이 적정수준에 도달했으며 더 이상의 원화 절상은 필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IMF 협의단의 원화 환율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그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의 집요한 원화 절상 압력에 쫓겨온 우리에게는 힘 있는 원군의 출현과 같은 반가움을 주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심정이다.
물론 원화가 실력이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거나 최소한 적정수준에 와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 (KDI)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우리 원화가 5%정도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고, 한 때 원화 절상을 강력히 촉구했던 미국의 「르레드·버그스텐」국제 경제 연구소장도 금년 봄 한국을 방문한 기회에 원화가 이미 적정수준에 와 있다고 밝힌바 있다.
그 같은 일부 기관이나 학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극히 최근까지 원화를 계속 절상해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진국, 특히 미국의 압력 때문이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6일 폐막된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 (NICS)이 계속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경제력에 맞게 환율을 조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잊지 않고 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는 환율 및 통상 정책에서 선진국들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 경제력을 갖추거나 흑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IMF 협의단의 평가를 우리가 다른 기관이나 학자의 논의보다 중시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국제 통화 질서의 구도 아래서 IMF가 갖는 비중 때문이다.
차제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제통화질서가 객관적 기준이나 논리 없이 강대국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환율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73년 스미소니언 체제 붕괴 이래 선진 각국은 환율을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삼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체로 자국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환율 정책은 경쟁력 강화보다는 물가안정에 우선이 주어져 왔으며, 따라서 그 결과는 언제나 우리 통화의 과대 평가로 나타났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물론 우리경제가 과거 수출보다는 수입 의존형이었다는데 근본원인이 있었던 것이지만 그 같은 타성은 수출주도형 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해 85년 봄까지도 정책 당국자들은 경기 과열이나 인플레에 대한 우려를 앞세워 원화의 평가 절하를 기피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었음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 동안의 원화 절상·임금 상승에 따른 경쟁력 상실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서 나온 IMF 협의단의 원화에 대한 평가는 이제까지 쫓기기만 했던 우리의 환율정책에 전기를 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기회를 우리 경제의 활로를 뚫는 시발점으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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