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내 마음 속의 당나귀 한 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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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 마음 속의 당나귀 한 마리' -이홍섭(1965~ )

내 마음 속에는

언제부터인가 당나귀 한 마리 살고 있다

귀가 몹시 커다랗고

고개를 잘 숙이는 당나귀

그 당나귀가

잘 우는 당나귀인지, 잘 안 우는 당나귀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오랜 친구를 찾아가거나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이 도시의 외곽을 배회할 때

어느덧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당나귀 한 마리

나는 이 당나귀가 좋아

풀만 먹고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강원도 봉평 이효석문학관에 갔다가 당나귀를 본 적이 있다. 종일 우리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느릿느릿, 꺼떡꺼떡 걷는 당나귀는 못 보았다. 시인들은 마음속에 동물을 키운다. 고래나 낙타, 기린 같은 것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생명들이다. 당나귀가 마음속에 있다면, 채식이 당연할밖에. 그대 마음속에는 어떤 동물이 사는지. 혹시 맹수가 살고 있어 생고기만 먹는 것은 아닌지.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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